自主之權-나의 철학

생활의 발견

nongbu84 2015. 5. 22. 11:05

이삭처럼 잘 여문 그리움을 손에 쥔 날, 하루 내내 마음이 어지러워 거리를 서성거립니다. 오전에는 얼룩무늬 햇살 드리운 은행나무 숲을 산책하다가 오후에는 노루오줌 같은 햇살이 졸다 가는 간이의자에 앉아 아이들의 웃음이 맴도는 운동장을 바라봅니다. 저녁노을처럼 잘 익은 그리움은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크든 작든 그리움을 가슴에 담은 사람은 귓불 빨개지도록 허리 굽혀 신발 끈을 묶습니다. 그리운 사람에게 달려가려 꽁꽁 동여맵니다. 인생이란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먼 곳에서 찾아오는 그리움을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려고 허리 굽혀 눈물 감추며 신발 끈을 묶는 일입니다.


겨울 바다가 그리워 경춘선 기차를 탔습니다. 굽이치는 몇 고개를 돌아 기차는 겨우 동해안 해안가에 나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에돌아서는 모퉁이가 없었다면 참 숨 가쁜 질주일 것입니다. 직선으로만 달리고 높이만 오르려 했다면 숨이 차서 오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곡선으로 돌고, 내리막길이 있고, 오르막길이 있어 숨 돌릴 여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산사가 그리워 개심사를 찾았습니다. 洗心洞을 오르면서 손을 씻고 마음을 씻습니다. 매캐한 소나무 향이 마음에 담깁니다. 한없이 치솟지만 않고 바람불면 가지 내어주고, 구불구불 오르다 이제는 가지를 뻗습니다. 부러질 듯 한 없이 내리 뻗기도 합니다. 소나무는 숲을 이루면서 각자 자기 속에 부러진 상처를 안고 구부러진 모양으로 서 있습니다.


마음의 강물이 흘러드는 사람을 만나면, 맑은 눈동자에 내가 보입니다. 잡은 손으로 따뜻한 조약돌 같은 약속이 전해집니다. 이 사람을 바로 지금 여기가 아니면 언제 어디에서 만날 것이며, 내가 아니면 누가 만날 것이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언제 어디에서 사랑할 것입니까?


가볍든 무겁든 만남은 골목길을 에돌아 나오면 그리움으로 변합니다. 꼬리에 불붙은 황소처럼 다시 달려가면 바람만이 휑하니 골목길을 빠져 달아납니다. 전봇대에 매달린 광고지만이 바람에 울고 있습니다. 떠난 사람에게서 죽음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누군가의 죽음이 내 인생을 감소시키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먹고 잠자고 친구와 만나고 헤어지는 일입니다. 친목회나 송별연을 베풀고 눈물을 흘리고 웃는 일입니다. 한 달에 한번씩 머리를 깎고, 퇴근하면 화분에 물을 주고, 이웃사람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가운데 흘러가는 세월이 감소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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