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
눈 덮인 강둑을 따라 산에 오르면
잘려나간 나무만이 흰 눈 속에서
둥글고 검은 나이테를 드러냈다
햇볕에 얼굴만 내민 밑둥치의 잘 영근
문양들, 그 과녁 속으로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는 햇볕과 솔잎의 눈빛들
빨려 들어오는 산새와 바람의 울음들
마냥 부풀대로 부풀었던 나이테는
겨울이 되어야 단단하게 깊어지는 거였다
나무는 저 과녁의 나이테가 되기 위해
먼저 산에 올라 그 자리 지키면서
자벌레가 한 삼십년은 재어야 할 길이를
계속해서 높여 왔던 것이다
매가 하늘을 빙빙 돌다가 단 한 번
정 조준하여 내리 꽂히는 것도
제 자신이 화살이 되어 꽂혀야 할
나이테의 과녁판이 그루터기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강물은 나무가 잘려나간 뒤에야
저의 나이테를 드러내는 이유를
오래전 산 그림자를 품는 날부터
배워 익혔던 것이니
제 몸에 벚꽃 잎 한 장 떨어져도
둥근 파문을 일으키고
나비 한 마리 찾아와 날개 스쳐도
허리춤에 푸른 빛깔 물들여 준 것이다
강물은 깊어질수록
비가 오면 단 한 방울의 빗방울도
놓치지 않는 품으로 빗방울마다
둥근 나이테의 역사가 저 각자의
삶 속에 있음을 보여주었으니
거대한 소나무 그림자로 넘어져
온 몸 적시기라도 하면 종아리부터
정수리까지 낱낱이 비추어
나무의 가지 끝 잔 솜털조차
한없이 전율하였던 것이다
강물은 넓어질수록
눈이 오면 온 강을 덮는 얼음장을 펼쳤으니
국경의 가난하고 시린 자들은 그 강을 넘어
탈출의 행렬을 새순 돋아나듯 이어갔던 것이다
눈 덮인 강둑을 따라 겨울 산에 오르면
작은 쇠박새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흰 빛깔이 흰 눈을 탄생시킨 게 아니라
흰 눈이 흰 빛깔을 탄생시킨 거라
솔잎은 흰 눈을 충분하게 왜곡하여
겨울에도 결핍없이 푸른 잎을 뻗치는 거였다
강둑을 따라 산에 오르면 청솔가지 부러져
계곡을 울리는 소리가 깊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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