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나이테

nongbu84 2018. 11. 12. 15:03

 

나이테

 

눈 덮인 강둑을 따라 산에 오르면

잘려나간 나무만이 흰 눈 속에서

둥글고 검은 나이테를 드러냈다

햇볕에 얼굴만 내민 밑둥치의 잘 영근

문양들, 그 과녁 속으로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는 햇볕과 솔잎의 눈빛들

빨려 들어오는 산새와 바람의 울음들

마냥 부풀대로 부풀었던 나이테는

겨울이 되어야 단단하게 깊어지는 거였다

나무는 저 과녁의 나이테가 되기 위해

먼저 산에 올라 그 자리 지키면서

자벌레가 한 삼십년은 재어야 할 길이를

계속해서 높여 왔던 것이다

매가 하늘을 빙빙 돌다가 단 한 번

정 조준하여 내리 꽂히는 것도

제 자신이 화살이 되어 꽂혀야 할

나이테의 과녁판이 그루터기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강물은 나무가 잘려나간 뒤에야

저의 나이테를 드러내는 이유를

오래전 산 그림자를 품는 날부터

배워 익혔던 것이니

제 몸에 벚꽃 잎 한 장 떨어져도

둥근 파문을 일으키고

나비 한 마리 찾아와 날개 스쳐도

허리춤에 푸른 빛깔 물들여 준 것이다

강물은 깊어질수록

비가 오면 단 한 방울의 빗방울도

놓치지 않는 품으로 빗방울마다

둥근 나이테의 역사가 저 각자의

삶 속에 있음을 보여주었으니

거대한 소나무 그림자로 넘어져

온 몸 적시기라도 하면 종아리부터

정수리까지 낱낱이 비추어

나무의 가지 끝 잔 솜털조차

한없이 전율하였던 것이다

강물은 넓어질수록

눈이 오면 온 강을 덮는 얼음장을 펼쳤으니

국경의 가난하고 시린 자들은 그 강을 넘어

탈출의 행렬을 새순 돋아나듯 이어갔던 것이다

눈 덮인 강둑을 따라 겨울 산에 오르면

작은 쇠박새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흰 빛깔이 흰 눈을 탄생시킨 게 아니라

흰 눈이 흰 빛깔을 탄생시킨 거라

솔잎은 흰 눈을 충분하게 왜곡하여

겨울에도 결핍없이 푸른 잎을 뻗치는 거였다

강둑을 따라 산에 오르면 청솔가지 부러져

계곡을 울리는 소리가 깊게 울렸다


 

'閼雲曲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음새꽃  (0) 2018.11.13
동백꽃  (0) 2018.11.12
과녁  (0) 2018.11.09
버팀의 미학 - 느티나무  (0) 2018.11.09
표본실의 호랑나비  (0) 2018.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