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의 가치
기러기는 거센 바람의 도전 속에서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만일 기러기가 기류를 이용하여 날지 못한다면 더 이상 기러기 일 수 없습니다. 공기의 거센 흐름에 자신의 날개를 얹어 날아가는 것입니다. 기러기가 하늘을 나는 고단함을 피해 바람이 없는 진공상태를 찾는다면 기러기는 죽고 말것입니다. 기러기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바람의 도전과 흐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바람의 흐름을 이용하여 기러기는 계절에 따라 이동할 때에도 역V자의 형태로 이동합니다. 그러면서 맨 앞에는 가장 튼튼하고 방향감각이 탁월한 기러기가 날고, 왼쪽줄에는 젊고 튼튼한 기러기가 줄을 이루어 날고 오른쪽줄에는 늙고 약한 기러기들이 날아갑니다. 왼쪽줄의 기러기들이 오른쪽의 약하고 어린 것들과 늙고 병든 기러기들을 거센 바람으로부터 보호하면서 날아가는 것입니다. 공기의 거센 흐름속에서 나는 법을 깨닫고 그 안에 자신들의 약자를 보호하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기러기에게 공기의 변화라는 불편함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불편함은 기러기에게 자유로운 비행을 위해 딛고 날아야 하는 역동적인 힘이었습니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도 마찬가지로 불편함을 이용하였습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속에서 꾸벅꾸벅 조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이 물고기를 쫓아 날았으며,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 먹으면 바닷가 근처의 언덕에 앉아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며 조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부터 갈매기 조나단한테는 하루의 따분한 일상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어색하였습니다. 조나단은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상의 반복, 그 불편함속에서 조나단은 갈매기는 물고기를 쫓아다니는 일이 아니라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일이 자신의 자유로운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물고기 한마리를 쫓아 다니며 겨우 먹이를 구하면 언덕에서 조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하늘을 날 수 있는 비행의 능력이 퇴화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몸에는 살이 피둥피둥 오르고 편안했지만 갈매기에게는 치명적인 날수 없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행능력의 퇴화는 더이상 갈매기로서의 존재의미를 상실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조나단은 하늘을 치솟아 올라 곤두박질치며 나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날개가 다치고 아팠지만 더 높이 더 높이 올라 하늘을 나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조나단은 가장 높이 나는 새가 되어 가장 멀리 볼 수 있는 갈매기가 되었습니다. 불편함은 갈매기에게 일상의 무의미함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날아올라 멀리 높이 볼 수 있는 눈뜨임의 시작이었습니다.
노르웨이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 저장탱속에 정어리의 천적인 메기를 넣는다고 합니다. 자신을 잡아먹으로려는 메기의 입질 속에서 정어리는 천적을 만난 불편함으로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정어리는 저장탱크 속에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가 있다고 합니다. 메기의 위협과 도전은 정어리에게 끝까지 살아 남을 수 있는 힘을 주는 원동력이었습니다. 나비가 되려는 애벌레 한마리의 불편함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애벌레는 나뭇잎을 갉아먹고 낮잠을 즐기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을때 소나기 쏟아지는 소리가 나듯 애벌레는 나뭇잎을 갉아먹는 소리에 스스로 도취하기도 하여 만족한 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날들의 반복속에서 애벌레는 더 이상 애벌레이기를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속에 있는 나비의 가능성이 꿈틀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위한 불편한 과정을 선택하였습니다. 자신의 몸속에서 실을 뽑아내어 고치집을 짓고 나방으로의 변화를 꾀했습니다. 실을 뽑아낼 때 온 몸이 뒤틀리는 아픔과 에려오는 눈물을 흘렸지만 참았습니다. 고치집속에서 그 모든 고통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삶의 외로움에 치를 떨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에 나비가 될 수 있는 일은 그 애벌레 한마리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일이었습니다. 외로움과 아픔이라는 불편함은 결국 애벌레를 한 마리의 나비로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애벌레는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나비가 되었습니다. 나비가 되어 꽃이 열매로 변화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불편함은 애벌레가 나비로 변할 수 있는 기회이자 계기였습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원래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던 아이였습니다.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었을때 죽을 결심도 하였지만 그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불편함을 오히려 더 큰 노력과 땀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의 집 이층에 세들어 살면서 얼마나 연습을 했던지 그는 1층 주인집의 천장에 물이 샐 정도였습니다. 피아노를 치다가 손가락이 아프고 열이 나면 찬 물에 담가 털고 그러기를 반복한 것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고 결국은 천장까지 새어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생활의 불편함을 자신의 삶을 이끄는 힘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사람은 불편함속에서 성장합니다. 불편함의 가치는 너무도 큽니다. 자가용을 타고 가는 일보다는 산길을 걸으면서 삶을 검토하고 음미할 수 있습니다. 불편함은 삶이 보다 훌륭하고 아름다워질 수있는 많은 기회와 힘을 제공합니다. 불편함은 포기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딛고 일어서는 기회이자 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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