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매미

nongbu84 2010. 6. 27. 22:43

매미  

 

쩡쩡한 여름볕 매미가 쩌렁쩌렁 울고 있습니다. 이마에 새긴 천형의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울음주머니를 달고 태어났습니다. 군청색의 야전 나무 껍질 사이로 여름볕 파고 들고, 불어난 장마줄기 수액으로 넘쳐흘러도 울음 주머니 눈물 한방울 없이 울어 댑니다. 눈물없는 꺼억꺼억한 가슴에 멍클한 공명이 가죽을 쳐댑니다. 나무에 발갈퀴 꽂고 제 몸의 주름을 연신 접었다 폈다 합니다. 파르르 떠는 진동이 바람을 헤집고 헤집은 바람은 소문만 무성한 계집애의 분냄새를 전해주었습니다. 땅 속 어두컴컴한 기다림의 세월이 짧지 않았습니다. 제몸속을 갉아 먹으며 텅 빈 그래서 울릴 수 밖에 없는 주머니 덜렁 하나 찼습니다.  여름볕만 만나면 발정난 울음으로 몸부림쳤습니다. 알에서 굼벵이로 나방으로, 축축하게 젖은 출생의 흔적을  쩡쩡한 여름볕 마지막 입은 껍질마저 벗었습니다. 잊어버릴 만한 암흑의 땅속이었습니다. 벗어던진 변화의 옷가지만도 켜켜히 쌓였습니다. 들이마실 수록 울림은 커지고 내뱉을 수록 슬픔은 빈공간을 채웁니다. 여름볕에 바짝 마른 기다림은 공명으로 가득채워도 사라지지 않고 그 소리만 커집니다. 빈 속에 가득찬 슬픔은 먼 곳으로 달려가지 못하고 제 안의 상처만 자꾸 덧나게 합니다. 더이상 게워낼 수 없는 그 곳으로 계집애의 눈빛이 겨우 들어옵니다. 매미는 제 울음에 겨워 빈속이 됩니다. 빈 속 주름 틈 새로 우주의 분냄새가 새어듭니다. 한 생애로 이어지는 그 긴 여행을 다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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