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네가 주던 조약돌을 받았다. 그 때 손금 사이로 땀이 배어들도록 꼬옥 쥐고 나는 아카시아 숲길을 달렸다. 돈 사러 콩 팥을 이고 넘던 산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로 달렸다. 그 곳에는 나의 유년을 태우고 떠날 버스 한 대가 기다렸다. 길 가의 나무들이 막 뒤로 달려갔다. 버스 안에서 나는 제 자리에 서 있는 줄만 알았다. 한 참을 지나 버스가 정지 한 후 나는 아주 먼 곳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풍지 울리는 바람이 불었고 악다구니 쓰면서 좌판을 벌린 구인광고지가 길 위에 가득했다.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수음과 밀실의 언어를 줍기 시작했다. 떨어진 이삭도 없었다. 밤이 새면 거리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고 분주하게 달려갔다. 육교를 오르면서 현기증을 느끼는 날이 많았다. 헌 책방을 기웃거리면서 다음 갈 곳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청년은 그 조약돌이 사랑의 맹서라고 생각했다. 가슴에 품었으며 코스모스 꽃을 닮은 자줏빛 연서를 쓸 때는 만지작거렸다. 이상하게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들으려 귀를 대도 아버지의 타령은 들리지 않았다. 매끄러운 손맛이 전부였다. 차가워지면 다시 제 손을 덥혀 조약돌을 꼭 쥐었다. 세상에 돌팔매질을 한참 신나서 하던 시절에도 주먹만 쥐고 조약돌은 던지지 않았다. 주머니 안으로 자꾸 숨어들어갔다.
처음으로 돌을 던진 것은 아직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새벽 숲길이었다. 잠들고 있는 새며 세수하고 있던 나뭇잎이며 숨어든 개미며 모두가 놀랐다. 돌이 떨어지는 소리는 숲을 흔들었고 그때 처음으로 자신을 볼 수 있었다.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낯선 방문객이었다. 창가에 비친 표정 없는 얼굴에서 퀭한 눈빛만이 살아 있었다. 무언가를 응시하다가도 무언가를 찾는 불안한 눈빛이었다. 눈에는 아직도 갈망과 집착이 가득했다. 채워야 할 창고처럼 비어있는 여백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월은 켜켜히 길 위에 쌓여갔다. 숲 위에 낮달이 차갑게 뜬 오후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진 후 그 돌이 어디로 갔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숲길에 남아있는지 누군가의 손안에 들어갔는지 알 길이 없다. 그가 돌을 손에 쥐었다고 던진 후 무척 외로웠으며 다시 외로웠다. 가을 오후에는 외로워 낙엽을 걷어찼으며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세월 속으로 다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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