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흘러 넘어가는데 길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 길이가 어느 정도이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며 어느 곳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장마에 풀이 우거져 사람 다니던 길도 사라졌습니다. 겨우 길의 흔적을 찾아 길을 만들며 산길을 넘었습니다. 산을 넘고 나니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지칠수록 몸과 마음에 버겁고 무거운 것들은 모두 버렸습니다. 그리운 사람하나만 가슴에 오롯하게 남았습니다. 흘러 넘는 이 힘든 길을 ‘그리운 사람’ 하나 만나려 걸은 것 같습니다.
강가에서
이른 잠을 깨 서걱서걱 산굽이를 넘는
발걸음을 배웁니다.
강물소리를 들으면서
포도송이 같은 눈물을 떨구며
주먹밥처럼 언 가슴을 녹입니다.
강처럼 흘러갑니다.
밧줄을 매어 ‘줄 배’를 끌면서 건너 마을에 사는 한 사람에게 갑니다.
강처럼 흐르는 세월 속
나는 단풍나무처럼
얼굴 빨갛게 취기가 오른 가을이 됩니다.
강가에 다녀 온 뒤
산은 내 머리맡에 앉았다 쉬어가고
마음에 모과 향 가득한 가을을 남기며
강처럼 그리운 사람 하나 두고 갑니다.
강가를 다녀온 후 강은 내 마음 속에 다 채우지 못한 소주잔의 여백처럼 곱게 남았습니다. 나는 얼굴 벌겋게 달아오른 단풍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강을 생각합니다. 강에 다녀온 동안 골목길에 등 굽은 봉숭아꽃이 줄지어 피었습니다.
여름 밤 청어 떼처럼 몰려다니던 골목길, 그곳에서 강처럼 흐르는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그 눈빛 한번에 단풍이 물들고 빨간 우체통은 편지를 주워 담았습니다. 손톱의 하얀 낮달도 봉숭아물들인 것처럼 붉어졌습니다. 골목길 어귀의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고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서점 문을 여닫을 때마다 솔깃 솔깃한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감나무에 몇 개 남은 감처럼 가로등 불빛 아래 바람에 흔들리며 걷고 있습니다. 골목길에 낙엽이 떨어져 수북하게 쌓여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발자국 소리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 길로 젊은 느티나무를 오르던 세월이 따라가고 마른버짐 같은 생활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나는 소주잔의 여백이 되고 얼굴 빨간 단풍이 되어 가을을 걷고 있습니다.
나는 흘러가면서 얼굴 빨간 단풍 같은 취기에 흔들리는 가을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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