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 牛步千里
사는 일은 길을 걷는 일이다. 스스로 불편과 가난을 스스로 선택하여 걷는 일이다. 낯선 여인숙에 하루를 묵는 일처럼 사는 일이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한 것이다. 창에 비친 분바른 달빛을 서글프게 바라보며 짐승 같은 달빛의 숨소리를 듣고 외로워하는 일이다. 길을 걷다가 하루 야영하는 일처럼 불편하고 외롭고 가난한 일이다. 풍찬노숙의 바람을 맞고 비를 맞으며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이다. 머리 풀어헤치고 거처 없이 떠도는 바람소리를 외롭게 들으며, 길에서 얼어 죽은 자들의 뼛가루가 휘날리는 푸른 달빛을 차갑도록 느끼는 일이다. 살갗을 아프게 파고드는 외로움을 느끼는 일이다.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한 삶의 길을 견딜 수 있는 힘은 함께 하는 동행에서 나온다. 불편과 가난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함께 걷는 동행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앉아 먼 곳을 보며 몽상에 잠기려 태어난 것은 아니다. 삶의 길을 걸어가려고 태어났다. 배가 항구에 정착하려 태어난 것이 아니고 바다를 항해하려 태어났듯 사람도 삶의 길을 걸어가려 태어났다. 사람은 누구나 떠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돌아오고 배웅하고 마중하며 삶의 길을 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는 고통이 있고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고통이 있는 길을 간다. 함께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며 더 주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며 길을 간다. 이 만큼이라도 함께 할 수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이 사람을 사랑할 사람이 나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길을 간다. 사람은 누구나 그 누군가와 함께 동행 한다. 단 한번뿐인 삶에서 단 한번뿐인 순간을 살며 단 하나뿐인 사람을 만나 함께 동행한다.
누군가가 앞서 걸었고 누군가는 내 뒤를 이어 걸을 것이고 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이곳에서 그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 나는 누군가 걸었던 길의 이정표를 보고 걸으면서 나 또한 내가 걷는 길을 걸어올 그 누군가의 이정표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이곳, 바로 옆에서 그 누군가가 걷고 있다. 그 누군가가 걷고 있으므로 나는 걷는다. 누군가가 걷다가 힘들어하므로 나는 그 사람에게 할 일이 있다. 그 사람의 가방을 들어주고 일으켜주고 기다려주면서 걷는다. 누군가가 걸으면서 가방이 무거워 힘들어 하므로 가방을 대신 들어주고, 발이 아파 쉬면 감싸주고, 그늘을 찾으면 그늘이 되어주고, 쉬면 기댈 수 있는 등받이 의자가 되면서 걷는다. 사랑할 일이 있으므로 걷는다. 따뜻한 가슴을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임으로 나는 함께 걷는다. 함께 걷는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걷는다. 사는 일은 함께 걸으면서 사랑하는 일이고 사랑으로 걷는 길이다.
큰 산의 오르막이 걸음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가시 덩굴로 엉켜 있는 길 없는 산속이 걸음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자갈로 뒤덮인 시냇가의 길을 걸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움푹 패인 웅덩이가 있어도 걸을 수 있다.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도 걸을 수 있다. 누군가가 붙잡아도 뿌리치고 걸어갈 수 있고, 산이 높고 험해도 걸어 갈 수 있다. 걸음을 방해하는 건 거친 환경도 붙잡는 사람도 아니다. 걸음을 방해하는 건 바로 내 양말을 파고든 모래알 한 알이다. 발바닥에 물집을 만들고 상처를 내어 걸을 수 없도록 한다. 살다보면 내 맘의 작은 것들은 발목을 채이도록 하여 넘어뜨리고 걸음을 방해한다. 아주 작은 모래알 하나가 맷돌처럼 크게 느껴지고 내 손톱 밑의 가시처럼 아프게 하여 가는 길을 붙잡는다.
휴식을 할 때는 가야할 먼 산 너머의 들판을 바라보고, 산을 걸을 때는 바로 발밑의 나무뿌리와 작은 돌멩이와 미끄러지는 곳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늘에 앉아 쉬면서 들숨날숨으로 쉼 호흡을 하고 사막 저편의 푸른 들판을 그리워할 줄 알고, 사막을 건너 갈 때는 푹푹 패이는 사막의 모래알 하나를 바라보며 한 걸음씩 옮기는 정성이 필요하다. 쉼 없이 갈 수는 없다. 쉬면서 모래알 서걱거려 바짝 마른 사막으로 변한 마음에 사람으로 향하는 걸음소리를 울리고, 걸을 때는 앞서 걸었던 사람들의 발자국을 보며 뒤이어 올 사람들의 눈빛이 머무를 발자국을 남기는 수고가 필요하다. 휴식하며 가야 할 곳을 미치도록 그리워하며 걸을 때는 버리고 떠나야 한다. 붙잡아도 떠나고 안락해도 떠나야 한다. 가야할 곳은 걸을 때 도달할 수 있다.
걸으면서 아무 곡절이나 사연 없이 걸을 수는 없다. 걸으면서 아무 사건이나 사고 없이 걸을 수는 없다. 추억 없이 걸을 수는 없다. 누구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건을 일으키며, 추억을 만들어 사람마음을 파고들면서 걷는다. 걷다가 넘어져 상처 나고 아파한다. 걷다가 함께 하는 사람과 헤어져 슬퍼한다. 걷다가 길을 잃어 다시 되돌아오기도 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걷기도 한다. 걷다가 넘어지면 넘어진 그 곳을 짚고 일어서서 걷는다. 누가 일으켜 줄까 기대하지 않고 넘어진 바로 그 곳을 손으로 짚고 일어서서 다시 걷는다. 걷다가 넘어진 그 곳은 곧 짚어야 할 자리이다. 사는 일도 헤어진 그 자리에 만남이 찾아오고, 슬퍼서 운 그 자리에 기쁨이 돋아나고 상처 난 자리에 새살이 돋는다. 가지 꺾인 자리가 옹이가 되고, 꽃잎 떨어진 그 곳에서 열매가 나듯 살면서 넘어진 그 자리가 삶을 살아가는 자리다.
걷다보면 동행하는 친구가 미워하는 사람보다 더 보기 싫은 날이 많아진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우주만큼 커 보여 아파지는 날이 많아진다. 내 발밑의 모래알이 송곳처럼 파고들어 동행하는 사람의 지치고 주저앉은 모습을 보지 못하는 날이 많아진다. 혼자 아파하며 길을 걷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럴수록 걷는 자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산을 본다.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이는 산의 품을 본다. 너그러운 바다를 떠안고 있는 산줄기의 푸른 근육을 바라본다. 자신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면서 스스로 걷는 자들은 도와주는 산을 한없이 바라본다. 산은 스스로 걷는 자들을 도우며 온갖 것들을 동원하여 걷도록 응원한다. 스스로 걷는 자는 마음에 사랑을 담은 자이다.
길을 걷고 나면 걷고 난 길을 기념할 일이다. 하지만 길을 걷고 걸은 자리에 기념비를 세울 일은 아니다. 돌로 만든 기념비는 풍상과 세월을 겪으면서 돌가루로 변할 뿐이다. 풍찬노숙의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걸었던 자리에 파둔 우물이다. 걷고 나면 누군가 걸을 길에 오아시스 같은 우물을 파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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