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일곱가르침
1. 나는 그리워하며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가만히 눈을 감아봐
볕바른 토담집이 보일게야
당신이 목말라하고
내가 그리워하는
기우는 해라도 있으면 좋아라.
가을바람이 차다면
당신 품속에 파고들 수 있어
더욱 좋아라..................
...........나는 아프게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나는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 살도록 태어났다. 나는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가을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시간 빈교무실에 앉아 있으면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인연이 다녀간다. 초등학교 시절 고무줄 끊으며 도망칠 때 앙칼진 계집애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름 뙤약볕 나무 그늘에 앉아 옆에 와서 앉으라 하던 계집애의 손짓이 보인다. 연애 시절 희뿌연 안개가 가득 찬 가로등 불빛아래 고개 들어 눈 맞추던 눈빛이 빛난다. 막걸리 사발에 고이던 눈물이 보인다.
가만히 눈 감으면 내 마음에 허락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와 긴 머리 휘날리며 걷다가 간다. 노을 기우는 강둑에 앉아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나는 온 몸이 굳고 손 금 사이로 땀이 찬다. 슬픔은 노을 속에 함께 떠나보낸다. 1년에 삼백 예순 다섯 번씩 마흔 네 해 동안 노을을 보았다. 볕바른 토담집이 보인다. 뜰팡(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기우는 석양을 온 몸으로 맞는다. 찬바람이 불면 사랑하는 사람은 내 품을 파고든다. 열여덟 해 동안 열여덟 번 내 품에 파고들었다.
교실 벽에 친구들이 하나씩 다녀간다. 한용이는 늙어 2000원짜리 우동을 파는 가게를 연다. 욱진이는 시를 쓰고 삽화를 그린다. 성조는 중학교 한문 선생이 되어 “自主之權”를 외친다. 시행이는 트럭운전을 하며 치킨 한 마리 사들고 집에 간다. 유찬이는 직장을 잃은 어깨로 고개 숙이고 있다.
유리창에는 고향의 풍경들이 얼비친다. 내 아버지는 이른 새벽 지문 묻어나는 삽자루를 허리에 둘러치고 논길을 걷는다. 밤꽃 냄새나는 논흙을 종아리에 잔뜩 묻힌 채 아침 밥상에 앉는다. 내 어머니는 돈 사러 열무 열 단과 팥 두말을 이고 장으로 향한다. 나는 집 뒤 산등성이에 올라 어머니의 뒷모습을 하릴없이 바라본다. 쑥대공이 집 마당에 가득 자란다.
유리창 너머 등굣길로 수많은 아이들이 걸어간다. 효준이는 떠난 계집애 때문에 교실에서 황소울음을 울었다. 울부짖다가 지쳐 꺽꺽대던 소리가 가슴을 친다. 성호는 쪽지 한 장 남기고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금방이라도 찾아올 것 같다. 희영이는 가출했다. 이틀을 찾아다녔다.
유리창 너머 먼 산으로 계절이 다녀간다. 겨울이 전깃줄에 고드름처럼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바람은 황소울음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를 흔들고 전기 줄을 잡아챈다. 봄은 붉은 진달래로 산등성이에서 뭉실뭉실 피었다. 여름은 뒤돌아볼 것 없이 성장한 채 숲을 이루었다. 가을은 목공실 옆 벽 틈새 사이에서 노란 국화로 피어났다.
............매달고 있던 아쉬움마저 떨 굴 수 있는 것은 그 자리에 서 있는 裸木뿐이다. 인생의 곡절마저 버리라 한다면 나는 살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외롭고 쓸쓸하게 그리고 견딜 수 없이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도록...........
2. 메밀 꽃 필 무렵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3. 木의 七訓(나무의 일곱 가지 가르침)
(1) 근본을 튼튼하게 다진다. 뿌리를 땅속에 질러 넣는다.
(2) 열매를 맺어 먹을 것을 준다.
(3) 버릴 줄 안다.
(4) 추울수록 단단해진다.
(5) 상처 나면 옹이를 만들어 더 강해진다.
(6) 베어지면 도끼에 향을 바르고 그루터기는 앉을 곳으로 변한다.
(7) 마르면 땔감이 되어 온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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