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합실 연가(戀歌)
모닥불을 탐[貪]하는 겨울 밤,
나는 마지막 기차를 기다렸다.
대합실은 여분(餘分)의 사랑을 갖고 있지 않았다.
누나의 연애편지처럼 수줍은 바람이 불고
손금 같은 비가 내리면
민들레처럼 환한 계집애의 얼굴이 유리창에 머문다.
천국을 외치는 목소리에서 녹슨 쇳소리가 나고
양말을 파는 손은 별처럼 파랗다.
나는 까치발을 하고 오랜 사랑을 기다렸다.
대합실은 떠나고 만나는 역사를
개찰구의 문고리에 새겨 넣었다.
보자기 틈으로 능금이 붉은 잇몸을 드러내고
유리창을 기웃거리는 바람은
똬리를 틀어 철로에 주저앉는다.
라면봉지처럼 구겨진 생활이
녹슨 철로위에서 하얗게 바랬다.
대합실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등(弔燈)처럼 졸고 있는 할아버지는
지팡이처럼 구부러진 죽음을 손에 쥐고
담배 잎처럼 메마른 청년은
어깨에 매달린 가방 속에서 인연(因緣)을 뒤적이고
수염이 제복의 단추처럼 매달린 검표원은
시계를 자주 보았다.
코스모스처럼 위태롭게 서 있는 여자는
막다른 골목을 닮은 사내를 흘깃흘깃 보았지만
모두들 침묵했다.
난로만 벌겋게 달아올랐다
기차역 대합실은 오랜 사랑에 친절하지 않았다.
마음이 기다리는 것만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했다.
기다리는 동안 모든 사람들이
내 오랜 사랑이었다가 이내 아니었다.
나는 함박눈이 되어 밤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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