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脚陽春-나의 사랑

봄밤

nongbu84 2012. 3. 13. 15:55

봄 밤

 

툭, 그냥 보내드렸습니다

 

차마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떠나는 당신을

 

하얗게 야윈 달빛 아래

마당을 훑고 가는 대나무 그림자이었다가

제 울음을 먹고 사는 갈대의 흐느낌이었다가

몸서리치는 봄눈으로 어둠에 누웠다가

비문(碑文)의 뺨을 쓰다듬는 바람으로

당신은 사라졌습니다

 

아, 삶은 한 편의 연극이었습니다

 

비에 젖은 달빛을 등에 지고

여울을 넘나들며

당신과 나는

오줌발처럼 뜨거운 인연을 맺었습니다

울멍줄멍 돌부리를 드러내면서

세월은 흘렀고

멍울멍울 자갈은 알을 슬었습니다

눈동자가 까만 별은 초롱초롱 빛났고

처음의 오솔길 같은 손금에서

연민과 고요가 수북한 산문(散文)이 태어났습니다

 

이제 먼 길 떠나 푹 주무셔도 됩니다

봄볕처럼 주무시다가 막이 오르면

매화꽃 향기로 오시든지

죽순으로 솟아나셔도 됩니다

 

아 참, 딱 한 번은 죄 없는 봄밤으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