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步萬里-나의 삶

삶의 바다, 그 낮고 고난하고 높은 항해

nongbu84 2012. 9. 17. 16:53

삶의 바다, 그 낮고 고난하고 높은 항해

 

 

사람은 앉아 먼 곳을 보며 몽상에 잠기려 태어난 것은 아니다. 삶의 길을 걸어가려고 태어났다. 배가 항구에 정착하려 태어난 것이 아니고 바다를 항해하려 태어났듯 사람도 삶의 길을 걸어가려 태어났다.

 

 

누군가가 앞서 걸었고 누군가는 내 뒤를 이어 걸을 것이고 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이곳에서 그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으므로 나는 걷는다. 바로 옆에서 그 누군가가 걷고 있으므로 나는 걷는다. 누군가가 걷다가 힘들어하므로 나는 그 사람의 가방을 들어주고 일으켜주고 기다려주면서 걷는다. 사는 일은 함께 걸어가는 일이다.

 

 

 

큰 산의 오르막이 걸음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가시 덩굴로 엉켜 있는 길 없는 산속이 방해하지는 않는다. 자갈로 뒤덮인 시냇가의 길을 걸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움푹 패인 웅덩이가 있어도 걸을 수 있다. 걸음을 방해하는 건 바로 내 양말을 파고든 모래알 한 알이다. 발바닥에 물집을 만들고 상처를 내어 걸을 수 없도록 한다. 살다보면 내 맘의 작은 것들은 발목을 채이도록 하여 넘어뜨리고 걸음을 방해한다. 아주 작은 모래알 하나가 맷돌처럼 크게 느껴지고 내 손톱 밑의 가시처럼 아프게 하여 가는 길을 붙잡는다.

 

 

휴식을 할 때는 가야할 먼 산 너머의 들판을 바라보고, 산을 걸을 때는 바로 발밑의 나무뿌리와 작은 돌멩이와 미끄러지는 곳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늘에 앉아 쉬면서 들숨날숨으로 쉼 호흡을 하고 사막 저편의 푸른 들판을 그리워할 줄 알고 사막을 건너 갈 때는 푹푹 패이는 사막의 모래알 하나를 바라보면 한 걸음씩 옮기는 정성이 필요하다. 쉼 없이 갈 수는 없다. 쉬면서 모래알 서걱거려 바짝 마른 사막으로 변한 마음에 사람으로 향하는 걸음소리를 울리고 걸을 때는 앞서 걸었던 사람들의 발자국을 보며 뒤이어 올 사람들의 눈빛이 머무를 발자국을 남기는 수고가 필요하다. 휴식하며 가야 할 곳을 미치도록 그리워하며 걸을 때는 버리고 떠나야 한다. 붙잡아도 떠나고 안락해도 떠나야 한다.

 

걷다 넘어지면 넘어진 그 곳을 짚고 일어서서 걷는다. 누가 일으켜 줄까 기대하지도 말고 무엇에 기대어 일어서려 하지 말고 넘어진 바로 그 곳을 손으로 짚고 일어서서 다시 걷는다.

 

 

길을 걷고 나면 그 길을 걷고 난 기념비를 세울 일이 아니다. 걷고 나면 누군가 걸을 사막 길에 오아시스 같은 우물을 파둘 일이다. 이정표를 함부로 세우려 하지 말고 스스로 이정표를 만들며 걸을 수 있도록 우물하나 파는 마음이 필요하다.

 

사는 일은 길을 걷는 일이다. 스스로 불편과 가난을 스스로 선택하여 걷는 일이다. 불편과 가난을 견딜 수 있는 일은 함께 걷는 동행이 있어 가능하다. 낯선 여인숙에 하루를 묵는 일처럼 사는 일이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한 것이다. 창에 비친 분바른 달빛을 서글프게 바라보며 짐승 같은 달빛의 숨소리를 듣고 외로워하는 일이다. 마치 길을 걷다가 하루 야영하는 일처럼 불편하고 외롭고 가난한 일이다. 머리 풀어헤치고 거처 없이 떠도는 바람소리를 외롭게 들으며 길에서 얼어 죽은 자들의 뼛가루가 휘날리는 찬 밤의 푸른 달빛을 차갑도록 느끼는 일이다.

 

 

걷다보면 동행하는 친구가 미워하는 사람보다 더 보기 싫은 날이 많아진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우주만큼 커 보여 아파지는 날이 많아진다. 내 발밑의 모래알이 송곳처럼 파고들어 동행하는 사람의 지치고 주저앉은 모습을 보지 못하는 날이 많아진다. 혼자 아파하며 길을 잃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럴수록 걷는 자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산을 보며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이는 산의 품을 생각한다. 너그러운 바다를 떠안고 있는 산줄기의 푸른 근육을 생각한다. 자신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면서 스스로 걷는 자들은 도와주는 그 길을 생각한다.

 

 

걷다 보면 동행하는 친구와 헤어져 그리워하는 날이 많아진다. 보기만하면 이야기 나누지 못함이 아쉽고 목소리만 들으면 볼 수 없음이 아쉽고 목소리라도 들어야 하루를 보내고 잠깐 얼굴 보면 헤어지기 싫고 때론 안타깝게 보는 것에 감사하고 때로는 더 주지 못해 마음 아프고 하루자고 나면 목소리와 얼굴을 떠올리느라 새벽잠 설치고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하늘은 스스로 걷는 자들을 도우며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사랑을 담은 자들을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