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이를 위한 작은 노래
.......가방을 싸며
떠나는 사람을 위해 가방을 싼다
다림질한 옷가지 몇 벌
줄무늬 양말 여섯 켤레
삶아 빤 속옷.....
차곡차곡 가지런히 포개어 접는데
다림질한 마음이 구겨진다
몇 번을 손으로 훑어 개키지만 자꾸 접혀
더 넣을 것이 없는가
옷 모서리 끝은 날을 세워 찌른다
그래, 떠나면 외롭다
외로운 밤을 위해
바위 틈을 파고 드는 물소리
산 허리를 감싸 안는 별의 손길
소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는 달을
칸칸에 켜켜히 넣고....
시(詩)가 있는 간이역의 쓸쓸한 이별을
그리고 삶아 찌든 때 뺀 아침을 넣자
뒤돌아보는 눈길을 위해
아침 일곱 시의 상큼한 햇살
식탁에 앉아 조는 오후의 하늘
푸른 냉이를 넣은 저녁으로
양식(糧食)을 준비하고.....
고샅으로 뛰어나오는 버선발걸음을
그리고 저녁 무렵의 일렁이는 사랑을 넣자
떠나는 이의 가방에
양말 값도 안 되는 한숨은 넣지 말자
앙감질로 총총 뛰는 절망과
개의 잠 같은 권태는 넣지 말자
행성을 떠돌아다니며 구도((求道)하는
어린 왕자의 발걸음 하나쯤은
스스로 넣도록 빈 칸의 여백,
헤어짐이 서툴다
보내는 마음에 쌀 이는 소리가 들려와
가만히 눈을 감으면
스스로 몸 부비며 일어서는 봄, 동백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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