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하람아 너는 나의 거울이고, 나는 너의 거울이겠지. 서로가 묻어나는 거울---. 그러나 언젠가는 자기 걸음을 걸어가겠지. 네 걸음으로 단 한 걸음이라도 걸어갈 수 있도록 나는 늘 기도할 테다..
섬진강 따라 아들과 함께 걷다
우리 학교에서는 해마다 방학이면 학생들과 선생님이 함께 ‘사제 동행”이라는 도보 여행을 한다. 그동안 설악산을 넘기도 하고 섬진강과 금강을 따라 걷기도 하였다. 작년 여름 방학에는 이 도보 여행에 초등 학교 5학년인 아들 하람이와 동행하였다. 사제 동행에 부자 동행을 하게 된 까닭은, 5학년이 되도록 엄마 품을 벗어나지 못한 아이를 좀 떼어 놓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평소 아들 녀석을 위해 따로 시간 내는 일이 쉽지 않았던 터라 함께 걸어 가면서 아들을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3박 4일의 일정이 녹록치 않을 터이나 선뜻 그러겠다고 한 아들 녀석과 함께 김 선생님의 긴급 수송 차량에 이용할 승용차를 타고 곡성역을 향해 출발한 때는 8월 2일 밤. 내려오는 동안 내내 우렁찬 천둥 소리에 번개가 휘번쩍 답하고 나면 비 바람은 더욱 심하게 몰아쳤다. 강풍을 동반한 지형성 폭우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듯 하다가 이슬비로 잔잔하게 젖어 들었다. “비가 이렇게 내리면 쉽지 않을 텐데------
새벽에 기차를 타고 내려온 일행과 만났다. 아침을 먹고 간간이 뿌리는 빗속에 불어오는 시원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길을 걷는다. 원래는 섬진강을 따라 걷다가 돌 징검 다리를 건너려 하였는데 념쳐 난 물로 다리가 물에 잠겼다. 물줄기를 거슬러 오를 수 밖에. 하람이도 형들과 어울려서 잘 걷는다. 발 바닥이 아프다고 하면서도 하람이는 의젓하다. 하람이와 발걸음을 맞추어 걷는다. 아버지는 옆에서 걷는 아들의 동행이 되어주고, 녀석은 나의 동행이 되고… . 내가 걷는 이유는 아들이 걷고 있기 때문이고. 아들이 걷고 있는 이유는 내가 걷기 때문이다.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다. 동행은 그래서 좋다. 사제 동행 속의 부자 동행........... 하람이와 나는 영원히 한 팀 일거란 생각을 한다. “벗어 던질 수 없는 운명으로 맺어진 너와 나는 '한 팀이다.“라고. 걸어오는 동안 아들 녀석은 자꾸 내 걸음을 의식했다. 걸음 걸이 맞추기 놀이를 한다. 내가 왼 발 나갈 때 아들 녀석도 왼 발이 나간다. 그러더니 하람이가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자고 한다. 나의 왼 발에 하람이의 오른 발이 나가고, 나의 오른 발에 하람이의 왼 발이 나간다. 거울에 비추고 걷는 자신의 발걸음이 되기.
‘그래, 하람아 너는 나의 거울이고, 나는 너의 거울이겠지. 서로가 묻어나는 거울---. 그러나 언젠가는 자기 걸음을 걸어 가겠지. 네 걸음으로 단 한 걸음이라도 걸어갈 수 있도록 나는 늘 기도할 테다..
다음날, 끝없이 뻗어 나가는 길 위에 서있다. 말도하기 싫은 듯, 온 몸을 휘적대면서도 아이들은 잘도 걸어간다. 비가 내리다가 잠깐 개면서 내리 찍는 햇살이 따갑다. 아들 녀석은 제 엄마가 챙겨준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한다. 먹구름 한 주먹 뻗치면 비가내리고 햇살 찔끔 나오면 사라진다. 힘들어 보이는 하람이가 제 동생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힘을 얻는 눈치다. 그래‘ 끝없이 놓인 길 위에서 아무 사심 없이 의지할 수 있는 형제가 얼마나 좋은 거냐. 내심 흐뭇해진다. 또다시 하루를 걸어 새날을 맞으며 우리는 하동 송림 공원 목적지에 다다랐다. 고등 학생 형들과 함께 닥오 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하람이는 스스로 자랑스러워한다. 도보여행은 스스로 가난과 불편함을 선택하는 행위이다. 스스로 가볍게 하여 불편함을 겪는 행위. 나는 하람이한테 이걸 알려주고 싶었다. 도보 여행은 낯선 자기를 만나 자신을 가볍게 만들고 많은 것을 버리는 일이다. “많아 보았자 가지고 갈 수 없다. 버릴수록 오래 걸을 수 있다... 인생 여정을 걸어갈 아들 녀석한테 아버지가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작년에 첫째 아이와 힘께 한 도보 여행을 했으니까 올해는 둘째 아들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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