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善若水-나의 가족

사랑하는 아들에게

nongbu84 2021. 4. 16. 09:08

사랑하는 하람이에게

 

봄볕이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를 파고들며 굴절되는 모습이 엽서의 배경 같은 느낌을 준단다. 학교를 산책하다가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스무 살까지 매년 두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서른 살이 가까워진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조금은 수줍어지기도 한다. 젊은 시절에는 사는 일을 높은 산에 오르는 일에 비유하여 생각했는데, 요즘은 사막을 걸어가는 일로 생각한단다. 산에 오르는 일이 시지프스의 운명처럼 반복되는 생활을 겪은 탓일 것이다. 사막을 걷는 일은 끊임없이 선택하고 결정하여 길을 가고 또 걸어가는 일이어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존재의 기쁨을 안겨주기 때문일 거란다. 하람아! 과거는 되돌아볼수록 삶의 교과서 같은 거라서 반성의 계기가 되고 현재는 부족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서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매력 있단다. 불완전하고 알 수 없음이 삶을 추동하는 중요한 원천일 거란다.

 

<봄 안부>

당신이 기다리는 평생의 엽서는

무사하게 도착했던가요?

 

나무와 나무 사이를 교란하는 봄볕

나무 등걸에 기대어 핀 민들레꽃

잘려나간 그루터기에서 움튼 새싹들

바람결에 퍼지는 생강꽃의 향기

응달을 환하게 밝히는 청노루귀꽃

나무 가지에서 흩날리는 흰 꽃잎들

땅에 잇대어 펼쳐놓은 그늘 몇 장

우듬지가 뱉어내는 가쁜 숨결

은은하게 울리는 물관의 연주곡들

온전하게 자리 잡은 나이테의 소식

 

연두 색감으로 물드는 아침 숲에서,

 

하람아! 엊그제 쓴 시란다. 네가 스스로 독립적으로 성장하여 네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고 너와 이야기하는 주말은 아빠에게 가장 큰 선물이면서 행복이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세상은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을 존경한단다. 너와 나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이면서, 함께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이고, 평생 아빠의 마음에서 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란다. 하람아! 삶을 충분히 만끽하며 살아가거라. 계절을 느끼는 감성을 가지고 세상을 읽는 지혜를 갖추고 행동하는 실천력을 지니고 살아보면, 시간이 흐른 후 네 자신의 기억 속에서 너란 사람이 스스로 대견할 거란다.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이곳에서 바로 네 스스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란다. 충분한 감성도 냉철한 이성도 결단 있는 행동도 다 세상과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함이란다. 네가 네 삶을 연주하면서 네 내면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거라. 네 가슴을 뛰게 만들고 네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다보면 그게 네 인생이 될 거란다. 아빠는 네가 아주 멋지게 성장하여서 네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무척 행복하다. 네 안에는 아직도 꺼내놓지 않은 많은 보물들이 숨어 있단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큰 사람이란다. 네 안에 들어있는 빛을 꺼내어 세상의 어둠을 비추고 사람의 아픈 마음에 다독이며 살아 보거라. 세상은 이미 너를 위해 모든 걸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단다. 네가 가고 싶은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는 거란다. 그리고 길은 걸은 만큼 길이 되는 이치를 잊지 말거라. 하람아! 아빠가 이 세상에 태어나 잘한 일 중 하나는 너를 낳았다는 거란다. 사랑한단다.

2021.04.15. 아빠가 오후의 햇살을 느끼며 적다.

 

 

 

사랑하는 동녘이에게

 

골짜기를 지나 비탈을 올라 칼바위 능선을 타고 봄산을 다녀왔단다. 산꼭대기에 올라보면 바위 몇 개와 소나무가 몇 그루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단다. 산은 정상이 목적이 아니라 오르고 내려오는 과정의 즐거움을 느껴야 산을 이해할 수 있단다. 오를 때 보지 못한 꽃을 내려올 때 볼 수도 있고, 바위틈에서도 자라는 진달래며 소나무를 보며 강한 생명력을 본단다. 동녘아! 산을 내려오면서 모처럼 동녘이 네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가 이 세상에 태어나 잘한 일 중에 하나는 동녘이 너를 낳았다는 거란다. 피아노 위에 있는 네 사진을 보면서 아빠가 자주 드는 생각이란다.

 

<산행>

 

그대를 안개 낀 강가에 두고

4월의 산을 무심하게 올랐네

 

골짜기와 비탈을 올라

칼바위 능선을 타고

햇빛의 소문을 따라

도착한 꼭대기

 

무덤 같은 바위 몇 개와

약속 같은 소나무 한 그루

 

바위 틈 나무 그늘에

수줍게 핀 노랑제비 꽃,

 

그대가 나보다 먼저 올라

거친 숨결 고르며

생생하게 눈웃음 짓고 있더라

 

바람에 흔들리는

내 심장의 연두 잎들이여

 

동녘아! 산을 오르다보면 내 발길을 방해하는 것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 마음에 있음을 안단다. 등산화 속을 파고 든 모래알 한 알이 발바닥 물집을 잡아 걷기 힘들게 하듯, 마음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이나 포기하려는 마음이 산을 오를 수 없게 한단다. 정말 강한 사람은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란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한 걸음 한 걸음 우직하게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오늘이란 시간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살기를 원했던 시간이란다. 오늘 중에서도 바로 지금 이순간이 가장 중요하고, 바로 지금 이순간 바로 여기 이곳에서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소중하단다. 동녘아!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능력있는 사람이란다. 네 안에는 네가 발휘하지 않은 능력이 들어있단다. 너를 믿고 네 길을 서두르지 말고 우직하게 가거라. 세상은 이미 동녘이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단다. 마음껏 살아보거라. 그러면서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살아가거라. 세상에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단다. 이성적으로 비관하더라도 네 마음의 의지와 신념으로 낙관하는 거란다. 삶을 직접 사는 순간에는 비극적인 것 같아도 먼 훗날 뒤돌아보면 희극이란다. 동녘아! 아빠가 사랑한단다. 2021.04.15. 아빠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