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 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閼雲曲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현종의 <하늘을 깨물었더니> (0) | 2015.05.12 |
---|---|
이문재의 <지금 여기가 맨앞> (0) | 2015.04.20 |
무엇이 성공인가.........랄프 왈도 에머슨 (0) | 2013.07.16 |
사군자 (0) | 2011.02.15 |
류근의 <계급의 발견> (0) | 2010.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