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步萬里-나의 삶

신발의 약력 - 신발 속에는 억새울음 한 말 담겼다.

nongbu84 2015. 11. 4. 10:29

신발의 약력

 

 

신발은 세계 공용의 언어다. 신발을 보면 그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몸짓을 갖고 있다. 신발은 가난이라는 남루한 역사를 지닌다. 가난한 삶을 이끌었던 시절을 추억처럼 간직하고 있다.

 

1. 나의 짝짝이 장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주워온 짝짝이 장화를 신고 동네 어귀 느티나무 아래로 술래잡기를 하러 갔다. 친구들에게 절름발이 거지라고 놀림을 받았다. 얼콰한 얼굴의 낮달, 그 어른이 되어 장화 한 켤레 장에서 사들고 왔다. 방안에서 신고 한 발을 들고 절룩 절룩 이리 저리 돌며 춤을 추었다. 어깨동무할 춤사위가 없이 두 팔은 허공에서 흐느적거렸다. 장화를 신은 사람은 어린 시절의 소년이 아니었다. 장화를 신고 으스대며 만날 친구들도 고향을 떠났다. 천장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무릎이 깨진 듯 문틈으로 새어든 가을 햇살이 멀쩡하게 아팠다.

 

나는 한 켤레의 장화를 신고 친구들과 놀고 싶었을 뿐이었다.

 

2. 테헤란 알리의 운동화

 

테헤란에 살고 있는 알리는 여동생 자라의 밤색 꽃매듭 구두를 잃어버렸다. 이삿짐의 양은 그릇에 담긴 슬픔같은 헌 구두도 사줄 수 없는 살림살이였다. 알리는 자라와 자신의 운동화 한 켤레로 학교에 다녔다. 오전 반인 알리가 학교를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오면, 자라는 그 운동화를 건네 신고 힘껏 달렸다. 옆구리가 찢어진 운동화 틈새로 가끔 발가락이 비집고 나오며 미끄러졌다. 어느 날 자라는 장님 아버지를 둔 소녀가 자신의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자라는 구두를 돌려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시장 골목을 달리던 알리는 막다른 골목의 벽에서 3등 상품이 운동화인 어린이 마라톤 대회 포스터를 보았다. 참가하여 1등도 2등도 안되고, 반드시 3등을 해야 했다. 하지만 1등을 하였다. 알리는 단지 3등을 하여 운동화를 받아 동생에게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애면글면 가슴에 붙은 결승선의 테잎을 쥐어뜯다가 손바닥을 베었다.

 

자라는 자신의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가고 싶었고, 알리는 운동화를 상품으로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3. 하의도 친구의 검정 고무신

 

내 친구 초등학교 5학년 여름 그 섬에도 비가 내렸다. 억새 같은 바람도 불어 귓불이 발개지도록 쳤다. 우산이 없어 비료 포대를 쓰고 학교에 가야만 했다. 사립문을 나서면서 포대를 벗어던지고 맨 등에 척척 달라붙는 비를 맞으며 갔다. 돌아오는 길 검정 고무신에 눈물을 담았다. 신발 가득 깨진 사금파리 같은 가난도 담아 바다로 떠나보냈다. 대문 앞 맨발로 비를 맞을 때 발바닥은 가려운 슬픔을 짓눌러 밟고 서 있었다. 내 친구는 아프고 슬픈 것을 싫어했다. 다음해 섬 더위 쫓기듯 아버지는 검은 색 운동화 한 켤레로 남은 채 저녁 바다 안개 속 너머로 사라졌다. 아껴 두었던 검정 운동화를 신고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었다. 하지만 밑바닥이 닳아 구멍 뚫린 고무신을 신고 갔다. 내 친구는 누군가 상처받지 않기를 원했다.

 

내 친구는 채울 수 없는 결핌을 싫어했다. 걷잡을 수 없는 넘침도 싫어했다. 모자르지도 넘치지도 않은 딱정이로 아문 상처를 좋아했다. 그가 오늘은 신발을 벗어 가을 햇살에 말린다. 발등위에 파도의 힘줄이 푸르게 흐르고 발톱마다 슬픈 낮달도 떴다. 벗어 놓은 신발 속에는 노을의 지문이 묻어나고, 발바닥 지문의 계곡마다 억새 울음 한 말과 수평선의 아득한 그리움이 넘칠 듯 넘치지 않고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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