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거처(居處)
이곳이 어디기에 이리도 능청스런 아지랑이 피어오르는가
이곳이 어디기에 푸른 보리 숨 가쁘게 뜨거워지고 있는가
이곳이 어디기에 톱날 같은 산날맹이에 뱃가죽 문지르며 노을은 지는가
이곳이 어디기에 붉은 홍시 한 알 까치밥으로 남았는가
여기 이곳에서 땡벌 쏘인 듯 하늘조차 파랗게 아파하고
여기 이곳에서 가시박힌 듯 바람은 앙감질로 대숲을 돌아다니고
여기 이곳에서 잔등 부어오른 돌담에도 함박눈이 내리더니
모두들 숨죽였다. 입을 꾹 다물었다. 소문만 무성한 외딴 집 굴뚝
청솔 타는 연기만 피어올랐다. 매캐한 어느 날 손마디 굵은 사내가
깨금발로 서서 처마 밑 풍경을 밤새 두드렸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끝내 인기척이 없자 마당 옆 우물을 대추나무 가시에 박힌 별들로 메꾸고
외양간에서 달빛 머금은 황소 한 마리만 훔쳐 달아났다.
ᆞ
'閼雲曲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훈리(月暈里) 솔숲 (0) | 2016.02.25 |
---|---|
겨울 바다ᆢ서천 홍원항에서 (0) | 2016.02.25 |
풍경(風磬) 소리 - 두타산 삼화사 (0) | 2016.02.19 |
냉이꽃의 내력(來歷) (0) | 2016.02.17 |
새벽에 별을보다 (0) | 2015.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