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 – 서천 홍원항에서
겨울 바다에 섰습니다. 누군가 부려놓은 연애인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옵니다. 누구의 가슴을 훑어낸 바람인지 비껴가지 않고 온 몸으로 달려듭니다. 내 마음을 제법 솜씨 있게 눙치며 귓불을 베고 손끝을 얼리고, 이마를 철썩, 얼얼합니다. 몸을 옹송그리며 당신을 생각합니다. 비릿한 추억으로 남은 당신. 당. 신.
그해 당신과 함께 걸을 때는 찬바람 부는 줄 몰랐지요. 어깨동무하면 살얼음 속살로 백기 투항(白旗 投降)하는 함박눈 맞을 수 있었지요. 그해 바닷가는 왜 그리 자주 눈이 내렸는지요. 노을은 불타 뜨거운 몸 바다로 투신해야 가라앉던 현기증 자주 일어났는지요. 그 바닷가에는 저녁 만선(滿船)의 연애로 자주 대문이 일찍 닫히고 노랑부리저어새는 철탑 꼭대기에 앉아 큐우우 큐리리 혼자 외로웠지요. 당신은 떠나고 들어오는 저녁의 살가운 방문이었지요.
당신과 헤어진 후 불기운 사라진 방고래의 어둠을 셈하며 자주 밤을 새었지요. 깨진 맷돌로 방구들을 깔아 놓은 듯 등짝에 자주 담이 붙었지요. 겨울밤은 길고 옴싹옴싹 입맞춤하던 입술 자주 터 갈라졌고요. 동백의 더운 피로 울타리를 세워 봄을 기다렸지요. 결국 꽃은 피지 않고 다음 해를 넘기지 못한 채 시들더군요. 당신은 바다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지요.
몇몇의 항구를 혼자 돌아다니거나 몇몇과 항구를 다니고 있습니다. 오늘은 홍원항 방파제에서 겨울 찬바람 맞습니다. 누군가 부려놓은 저 파도 같은 아픔을 봅니다. 누군가의 가슴을 훑어 나온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 묻습니다. ...당신도 아픈 사람이지요. 저 파도는 당신이 부려놓은 거지요. 이 바람은 당신의 가슴을 훑고 지나온 거지요. 당신 안에도 바람이 불지요. 당신이 파도이고 바람이지요...
오늘 바다는 더 거친 파도가 일고 억센 바람이 붑니다. 겨울 바다에 서서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나는 붉게 타는 노을로 몸 던져 당신에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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