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마실 고모 - 싸리꽃 이야기

nongbu84 2016. 4. 26. 15:17

마실 고모 - 싸리꽃 이야기

 

개미가 부스러기 물고 실 같은 하루를 기어 집으로 들어갔다

 

한 끼의 양식(糧食)을 위해 풀잎을 자르는 일은

사랑할 수 없는 운명을 사랑하는 것보다 거룩한 일이리라

먹이물고 한 나절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은

겨울 지나 봄이 오는 것만큼 성스러운 일이리라

집으로 들어가 나누어 먹는 저녁의 식탁은

무심하게 아지랑이를 바라보는 일처럼 황홀하여라

 

돌밭에도 하늘 손길 닿은 거라며 평생 그 밭을 헤집느라 손톱마저 닳아 그 손톱 단 한번 깎은 적이 없던, 깜부기처럼 까만 밤까지 타작 타작 도리깨질하던, 오디 같은 젖꼭지 더듬던 사내의 홀연(忽然)한 죽음도 무심하게 넘기고 아침마다 고무래로 봄 햇살 수북하게 끌어 모아 볏 더미처럼 쌓던, 매일 저녁 댓돌 신발 가득 찬 달빛을 단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하고 쓰러져 잠들던, 결국은 누에처럼 긴 잠을 자다가 제 몸에서 뽑은 실로 수의(壽衣) 한 벌 해 입고 떠난, 죽어서도 하얀 명주실 자아 싸리 꽃무늬 수놓은 비단 한 필을 남긴,

 

마실 고모 삶이 그러했으니,

세상 쌀 둑의 티 검불 다 골라내지 못했어도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