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도깨비 바늘 - 내 친구 영수

nongbu84 2016. 7. 29. 10:37


도깨비바늘 - 내 친구 영수

 

영수는 시골 마을의 허물어져 가는 낡은 집(廢家)을 부수는 사람이다. 사람이 살지 않아 쑥대공이 억센 폐허(廢墟)를 부수어 철거한다. 곰팡이 슬고 구멍 숭숭한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옹이 빠진 구멍에 거미줄이 겹겹이 쳐진 기둥을 부수고 달력 걸었던 자리만 뽀얀 벽을 부수고 아궁이에서 굴뚝까지 불길을 덮은 시커먼 끄름 덕지덕지 붙은 구들장을 드러낸다. 그와 막걸리라도 한 잔 하면 도덕을 부수고 가식을 부수고 교양을 비웃고 체면을 난도질한다. 육두문자에 난봉꾼이다. 외로워서 시집간 여자를 후려내어 살다가 헤어졌다. 노래방에 가면 만 원 권 지폐를 노래방기기 화면 속의 아랫도리 벗은 여자의 물컹한 가슴에 척척 붙인다. 그런 그가 엊그제 나를 부수었다. 나의 폐허, 내 거칠고 쓸쓸한 사막의 모래 바람이 이는 마음을 부수었다.

 

지난 번에 말여 느그 형 휠체어 타고 가 길래 내가 차로 태워다 줬어야 느그 형 주름이 무슨 밧줄 같더만 형 자주 찾아 뵈여 글구 말여 느그 시골 집에 가니 엄니 누에처럼 누워 계시더만 얼마 못 사실 것 같더라 사는 게 뭐여 별거 있어 가까운 피붙이 자주 찾아보고 뜨신 밥 한 그릇 같이 먹는 거 아녀 그려 너 대학 나왔잖여 그럼 네가 더 잘 알 것지 난 말여 외로워서 맴 고운 여자 만나 등 따숩고 배부르게 잠자는 게 소원이여 오늘 술값은 내가 내니께 걱정 말고 선생이 무신 돈 있다냐 선생 똥은 개도 안 먹어야 애들 델꼬 오직 속 썩으면 그러것어.......

 

영수는 부수고 걷어내어 땅을 복구한다. 거두어 낸 폐허에선 봄이면 연두 싹이 고개 쳐들고 자란다. 영수는 내 친구다. 하얗게 센 머리털이 듬성듬성 나서 도깨비 풀처럼 곧게 뻗어있고 축 처진 한쪽 입 꼬리가 부아가 잔뜩 난 표정을 만든다. 하지만 그의 손을 잡으면 다리에 힘이 빠지는 듯 억센 기운이 전해지고 움켜준 손아귀의 힘은 바위도 부술 기세다. 그 두 손으로 회색의 벽에 틈을 내고 금을 새긴다. 해머를 들고 장작 패듯 콘크리트 바닥을 부순다. 손바닥 굳은살은 쇠구슬처럼 박혀 있어 그의 노동이 내려칠 때마다 삶의 분노가 손으로 울려졌을 것이다. 그 두툼한 손등은 꼭 두꺼비 같다. 헤어지면서 잡던 그 손으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손가락 마다마디가 부서지듯 얼얼했다. 잊을 수 없는 악수다. 흙바람 머리 풀어 치받는 내 가슴에, 황폐하고 황량한 폐허의 내 마음까지 전해지던 따뜻함..... 내 안 찬 방의 구들장이 덥혀졌다. 아직까지 단 한 사람도 온전히 사랑한 적 없는 나의 자린(玼吝) 자의식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인색하고 옹졸한 내 자아 속 부끄러움을 꺼내놓고 그는 사라졌다.

 

그를 생각하면 밤 몰래 이웃의 논에 볏단을 옮겨놓던 도깨비 동화도 떠오르고, 옷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도깨비바늘도 생각난다. 가시 돌기를 다 떼어냈다 싶어도 끝까지 달라붙어 나를 콕콕 찌른다. 어느새 마음까지 달라붙어 딱딱하게 굳은 나를 부수고 또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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