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영정초등학교 - 플라타너스, 정문, 그리고 담벼락

nongbu84 2017. 4. 25. 15:50

영정 초등학교

1. 플라타너스

 

너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바람보다 먼저 달려가 노을 붉도록 사랑하던 사람을 기다리던,

바람 불어도 그 사람 오는 방향으로만 고개 꽂꽂하게 들고

바람 그치면 그 사람 오는 방향으로만 몸 기울어져 한없이 흔들리던,

그런 날은 저녁도 빨리 기울어져 어둠 속 목련 잎사귀가 수런거렸지

뼈만 남은 가지를 한쪽으로만 뻗어 한 줄로만 서야 했던

5월의 가장 나중의 저녁마다 서 있는 플라타너스,

그런 저녁은 비도 한 줄로 내리다 그쳐 가장 처음의 아침까지

잎사귀 끝마다 낙하 직전의 아슬아슬한 그리움을 매달았지

결국 너는 몸살을 앓고 불덩이가 되어 온 몸 물집이 생겨

그 허물 벗을수록 생긴 얼룩 지금은 수만 개의 별로 떠돌지

 

2. 정문

 

너에게도 그런 인연이 있었지

달빛이 거미줄처럼 얼굴에 감기는 고갯길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던,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와 손 흔드는 감꽃의 배웅을 받으며

산 그림자를 건져 내려 그물 하나 메고 강으로 먼 길 떠나던,

10월의 가장 나중의 저녁마다 등불을 내 걸던 어머니의 손길 같던,

그런 날 저녁노을은 산등성이를 넘으면서 천개의 솔잎을 내리 쏟았지

강물에는 피라미가 튀어 올랐다가 몸 뒤집어 떨어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더라도 다음의 은빛 비늘 반짝이는 아침을 맞던 정문,

그런 아침은 온 종일 바람이 머리 풀어헤치고 들판을 지나 산을 넘고

배나무 가지 끝 가시에 찔린 바람은 개미들의 행렬을 따라 자국을 내었지

결국 너는 몸살을 앓고 불덩이가 되어 온 몸 버짐이 피고

그 껍질 벗으면서 지른 비명 지금은 수만 개의 종소리로 울리지

 

3. 운동장

 

너는 지금 주저앉아 허물어져 가는 저녁 시간이 되었지

네 몸에선 천둥 번개에 놀라 쑥 대공이 흰 뿌리를 드러내며 자라고,

그 때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밖에 필 수 없고

바람이 오는 곳으로도 흔들리고

떠난 곳으로도 흔들리는 질경이 가득한,

비가 내려도 젖지 않던 향기마저 사라진 채

호흡을 멈춘 채 몸의 촘촘한 긴장마저 굳어 딱딱한 침묵 속에 있는 운동장

다만 황소 한 마리 그 큰 눈 속에서 나오는 눈빛처럼

바닥에 사금파리로 그었던 동무들의 이름은 빛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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