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인연(因緣)

nongbu84 2017. 10. 24. 08:43

 

인연(因緣)

 

염소 똥처럼 어둠이 쏟아지는 대웅전 기둥을 타고

담쟁이넝쿨이 뒤란 처마 끝 풍경까지 차 올랐다

향 타는 냄새가 났고 빛바랜 단청이 쓸쓸하게 늙어갔다

절을 하고 한 사람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읍내 장터에서 산나물을 팔고 굽이굽이 휘어진 산길을

오르며 담쟁이 넝쿨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던

물동이 이고 걷다보면 찰랑거리는 풍경소리 났던

청솔 타는 매캐한 업보를 쇳소리를 내며 얘기했던

문양 같은 아이 둘 남기고 머리 깎았던

결국은 단풍 드는 마음 닫아걸었던 사람을

나는 대웅전 계단을 오르다가 만났다

 

승복 입은 누나는 합장하며 파랗게 깎은 머리를 숙였다

내 양손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당길 뿐 합장할 수 없었다

저녁 종소리가 마른 쇳소리를 내며 골짜기로 퍼졌다

뒷산에서 부엉이가 슬프게 울고 구절초가 하얗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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