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겨울 감나무

nongbu84 2017. 11. 6. 11:39

 

겨울 감나무

 

당신 날도 추운데,

거기 뒤란 돌담 옆 참 오래 서 있었네

파란 하늘로 향하는 길을 가기 위해

담 넘어 옆집까지 가지 내주는 삶을

선선한 그늘 만들어 기다리는 삶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네

가볍고 외롭고 높아지는 길을 위해

신혼 반지 같은 꽃잎이야 목걸이 걸던 추억이야

첫날밤 속옷 벗듯 부끄럽게 벗어던졌지만

반성 없는 여름 잔가지는 툭툭 분지르고

설익은 땡감은 꼬다리째 잘라내었지

허튼 것 하나 없이 물든 연두 잎처럼

때 묻지 않은 소원 가슴에 품고

그 여름 모질고 단호하고 눈부시게

종아리가 검도록 비바람의 회초리를 맞았네

송두리째 뿌리를 뽑아내려 달려드는

장마 비를 겪지 않는 삶이 어디 있을까

비바람 칠수록 뿌리에 온 힘을 주어

더 내리뻗고 자신을 지탱 하였지

물컹거리는 슬픔 어깨로 슬쩍 밀어넘기고

잘려 나간 이별은 옹이로 매듭지었지

가을에도 당신 뜻은 어설프지 않았네

된서리 모질어도 단단해지기 위해

화려한 치장 대신 속울음 삼켜 다독이고

무거운 걱정 대신 손에 쥔 욕심을 놓아

시리고 부르튼 발등을 덮고 또 덮었지

자신이 가볍고 또 가벼워져야

까치들이 부러진 상처를 물고와

어깨에 집한 채 지을 수 있다는 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네

겨울 까치를 위해 그해 가장 튼튼한

홍시 남겨 놓는 것은 너무 당연하였지

당신은 찬 땅에 떨어져도 견딜 수 있는

가장 나중까지 튼튼한 씨앗 들어있는

몇 개만 초롱불처럼 매달아 두었네

그건 한 겨울 추위를 견딜 검붉은 각오였지

어여 쪼아라 어여 허튼 살점을 발라라

당신은 씨앗 하나 떨어져 추위 견디면

다음 해 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얼마나 위대한 사건이 일어나는지

똑똑히 지켜보며 오래 오래 살았으니까

 

쨍쨍하게 바짝 당겨 입은 찬 겨울 낮달 아래

당신이 홀로 겨울 모두를 받아들이고 있는 건

발바닥을 간질이고 있는, , 단단한 고놈 속,

숨 가쁘게 뛰고 있는 사랑의 붉은 심장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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