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마지막 얼굴
나는 주소지에 거주하지 않았다 내 마지막 주소지는 거주불명 처리한 어느 동사무소, 울타리에 걸터 앉은 능소화가 떨어져 땡볕아래 나뒹굴었다
거리를 떠돌다가 담벼락에 자주 부딪쳤다 엄마의 얼굴도 모르는 나를 폐지 줍던 할머니가 손수레에 거두어 키웠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이 창문에 어른거리면 집이 싫었다 부러진 촉으로 긁어 새긴 달의 문신이 싫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여기저기 떠돌면서 거리의 生理를 배웠다. 무리에 끼어 함께 다녀야 살아남는 단순한 원리, 전철역 닫힌 개찰구의 문고리를 잡고 잠들거나 험상궂은 시간의 잔심부름을 하고 푼돈을 쥐는 똘마니 신세였다 여름이면 허기(虛飢)를 따라 현장을 다녔다 묶어놓은 철근 사이로 녹슨 별이 잠깐 빛나던 밤 빈 소주병은 목청껏 녹물 흐르는 통증을 뱉어냈다 나는 돌아다닌 만큼 여러 개의 주소를 가졌다 이 도시에 오기까지 여러 번 옮겼다, 옮겼다, 월세 방은 나의 生도 월세로 쪼개고 짧은 거주는 내 가슴도 잘라냈다 조각 조각,
나는 담벼락에 마지막으로 박혀 죽은 삶의 흉터.....차에 깔려 生을 마감한 지렁이가 보도 위에서 납작하게 마르고 있다 경찰은 이미 나를 행방불명자로 처리했고, 청소부는 나의 죽음을 결코 수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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