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의 변(辨)
나 이제 떠나려 하네 바짝 마른 몸, 폐 한 귀퉁이에 구멍이 뚫리고 흰 반점의 결핵도 나타났지 장마 비에 부러진 생가지들, 이리저리 뻗다가 몸 이곳저곳에 패인 생채기들, 폐렴 걸린 생각들 이젠 돌볼 처지가 아니네 이제 내 죽음은 가장 저렴한 등급, 무연고자가 되네 이미 심폐소생 거부를 동의 했네 모두들 임종을 보지 않겠다며 등 돌리네 그 무엇과도 관련 없음, 그 누구의 기억에서도 사라짐, 막다른 골목에 가면 내 몸에 새긴 사체포기 혈서를 볼 수 있을 거라네
...난 말이죠 살면서 봄바람에 들뜬 꽃봉오리는 버렸어요 여름 장마에 웃자란 마음은 당연히 잘라냈고요 가을에도 꾸며낸 웃음은 거두었지요 하지만, 겨울밤의 벌거벗은 적막을 알지 못했어요 나보다 먼저 떠난 이들의 소식을 들었을 땐 동정심보단 원망이 앞섰어요 왜 그만하면 충분했다고 말하지 못했나 몰라요 이제 내 차례에요 묵묵히 비온 날 바닥에 붙어 쓸리지 않는 낙엽 같은 애착은 그만 둘래요 그저 가볍게 막막해 보는 거죠
나 이제 흔적 없이 사라지네 시인들의 미학적 감별도 세상의 장탄식도 아주 잠깐, 나 아주 빠르게 소각하여 흔적조차 사라지네 누구도 그리워할 생각은 없네 버려지는 것들이나 스스로 떠나는 것들에게 과거는 심부름 떠났다가 또 술집에 들러 돌아오지 않는 남편 같아 영 궁금하지도 않네 한 잎의 낙엽처럼 홑지게 훌훌 떠나,
찬 靑별 반짝이는 흰 눈길에서, 심장처럼 붉은 산수유 열매를 홀로 오롯하게 만나 한없이 눈멀어지고 싶네
낙엽의 변辨
나 이제 떠나려 하네 바짝 마른 몸, 폐 한 귀퉁이에 구멍이 뚫리고 흰 반점의 결핵도 나타났지 지난 시절 장마 비에 부러진 생가지들, 이리저리 뻗다가 몸 이곳저곳에 패인 생채기들 그 땐 살필 처지가 아니었지 이제 내 죽음은 가장 저렴한 등급, 무연고자가 되었네 이미 심폐소생 거부 동의를 했네 모두가 임종을 보지 않겠다며 등 돌리고 서둘러 귀가 하네 그 무엇과도 관련 없음, 그 누구의 기억에서도 사라짐, 막다른 골목에 가면 내 몸에 새긴 사체포기 혈서를 볼 수 있을 거라네
... 난 말이죠 살면서 봄바람에 들뜬 꽃봉오리는 버렸어요 여름 장마에 웃자란 마음은 당연히 잘라냈지요 가을에는 어거지 웃음도 거두었고요 죽음으로 가는 근본을 잊고 살았던 거 같아요 나보다 먼저 떠난 이들의 소식을 들었을 땐 동정심보단 원망이 앞섰어요 왜 그만하면 충분했다고 말하지 못했나 몰라요 이제 내 차례일 뿐이에요,
나 이제 흔적 없이 사라지려 하네 시인들의 장탄식도, 미학적 감별도 아주 잠깐이었네 아주 빠르게 소각되어 처리될 것이네 누구도 원망할 생각은 없네 나무에서 버려지는 것들이나 스스로 떠나는 것들에게 이미 과거는 아내 심부름 떠났다가 또 술집에 들른 남편 같아서 영 궁금하지도 않네 한 장의 낙엽처럼, 나 이제 홑지게 떠나려 하네 내 그림자조차 기울지 않게 조심하려 하네 마지막 남은 유일한 소원은 홀로 오롯하게 내 몸 태워 연기 피우는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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