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에
늦가을 빈 들판의 오후에 섰다
이 짧은 가을이 지나면
긴 겨울이 찾아 올 것이고
미루나무처럼 서서
마른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것 말고
무엇을 할까
서리 맞아 시든 고춧잎을 훑거나
돈부 콩 줄기를 거두다가 손바닥을 베이거나
그늘 사라진 호두나무 가지를 바라보거나
왜소하게 늙은 얼굴을 우물에 비추어 보거나
더 이상 오는 사람도 더 이상 떠나는 사람도
없는 길을 한없이 바라보거나
조등처럼 달린 까치밥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툭 떨어져 터진, 빨간 홍시 속에서
낙엽 덮고 봄까지 버텨 싹을 트일
감 씨앗 하나를 줍는 일은
겨울에 봄을 접목하는 가지끝처럼
늦가을 편지의 웅숭깊은 안부처럼
참, 살갑다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