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먼지의 족장

nongbu84 2020. 7. 23. 14:50

먼지의 족장

 

과거를 백미러에 넣고 달려온 고향집, 방음 이중 유리창 사이에 갇혀 퍼덕거리던 어둠이 아직 질식하지 않았다 형광등을 켜자 네눈박이 나방 떼가 날개를 접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날개에 묻은 불빛이 하얗게 분말을 쏟아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래전의 뜰팡에 가지런히 놓인 아버지의 신발 한 켤레.....저녁의 찢어진 지느러미, 말라버린 노을의 검불, 부서진 별빛 가루, 안개 유령의 머리 비듬, 앉은뱅이 밤의 한숨 소리, 어깨 무너진 쑥대공의 비명 소리, 무너진 흙담의 황토 빛깔, 부엌의 고린내 나는 부레....빈 신발에 가득 쌓였다 여러 번 발목 접질린 나무가 뿌리를 뻗어 들썩였지만 신발은 꿈쩍도 않고 먼지를 가득 담았다 폐가의 신발은 먼지족의 공동 납골당, 신발 먼지를 털어내고 달빛 몇 줌을 넣어주고 싶었다 나는 열매 없이 향기 없이 그늘 없이 자란 은행나무 한 그루, 길에서 묻어난 먼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발목 복사뼈만 돋아 올렸다 지평선으로 향하던 눈에도 먼지가 끼어 나의 시선은 녹슬었다 무너진 흙담 사이에서 깨진 거울 조각이 빛났다 그 안에서 내가 끌고 온 모든 길 위에 서걱이는 먼지가 쌓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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