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날’을 맞아
하나. 학생의 날을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오늘(11월 3일)은 학생의 날입니다. 함께 많은 것을 나누고 싶은데, 가진 것이 교육에 대한 ‘가난한’ 고민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무엇인가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시(詩)와 마음을 담은 글을 준비했습니다. 스승의 날 칠판에 “글도 써주고 풍선도 달아주고 촛불도 켜주며 스승의 노래를 합창해 주고 꽃도 달아주는 마음”에 비하면 참 보잘 것 없는 선물 같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담아 고른 시입니다. 이 선물이 여러분들의 하루에 조그만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다거나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네.
오히려 우리 앞에 펼쳐진
끝없는 사막을 묵묵히 가리키겠네.
섣부른 위로의 말은 하지 않겠네.
오히려 옛 문명의 폐허처럼
모래 구릉의 여기저기에
앙상히 남은 짐승의 유골을 보여주겠네.
때때로 오아시스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사막 건너의 푸른 들판을
이야기하진 않으리.
자네가 절망의 마지막 벼랑에서
스스로 등에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설 때까지
일어서 건조한 털을 부비며
뜨거운 햇빛 한가운데로 나설 때까지
묵묵히 자네가 절망하는 사막을 가리키겠네.
낙타는 사막을 떠나지 않는다네.
사막이 푸른 벌판으로 바뀔 때까지는
거대한 육봉 안에 푸른 벌판을 감추고
건조한 표정으로 사막을 걷는다네.
사막 건너의 들판을 성급히 찾는 자들은
사막을 사막으로 버리고 떠나는 자.
이제 자네 속의 사막을 거두어내고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서게나.
자네가 고개 숙인 낙타의 겸손을 배운다면
비로소 들릴 걸세
여기저기 자네의 곁을 걷고 있는 낙타의 방울소리.
자네가 꿈도 꿀 줄 모른다고 단념한
낙타의 육봉 깊숙이 푸른 벌판으로부터 울려나와
모래에 뒤섞이는 낙타의 방울소리.>
위 시는 김진경의 <낙타>라는 시입니다. 여러분들 스스로가 걸어가야 할 삶의 사막에 대해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때이른 절망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스스로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묵묵히 사막을 향해 걸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일만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각자는 삶의 사막을 걸어가야 할 유일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을 대신하여 걸어줄 그 누군가도 없습니다. 오직 여러분들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 스스로의 힘으로 사막을 걷다보면, 사막을 걷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사막을 걸어가야 할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만큼 자기 삶을 책임지고 있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각자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를 가슴에 담고, 두 어깨 활짝 펴고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두울. 바람이 불고 가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늦가을 곱게 화장한 단풍들이 눈발처럼 날립니다. 단풍 몇 장이 마음에 자분자분 젖어듭니다. 단풍잎처럼 울긋불긋한 연애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걸어다니는 길에 햇볕은 몇 줌의 따뜻함을 던져놓고 사라집니다.
내가 지금보다 어렸을 적엔
1.
내가 지금보다 한참 어렸을 적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지
그러나, 세상을 살며 난 알았네
고운 사람 하나 만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
내가 지금보다 한참 어렸을 적엔
꿈이 참 많았지
그러나, 어른이 되어 난 알았네
꿈 하나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
2.
내가 지금보다 한참 나이든 뒤에
난 무슨 노래를 부르게 될까
어떤 모습으로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 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거야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테니
.................................................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때가 바로, 시작해야 할 때인 걸
위 시는 백창우라는 음유시인이 젊은 날에 썼던 시들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아 골랐습니다. 때론 고단하고 힘든 학교 생활, 뭔가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에 짓눌려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여러분들에게 조그만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엣. 사람이 함께 살면 서로에게 의미가 됩니다.
사람도 함께 살아가면 서로에게 잔잔하게 젖어드는 눈짓이 되고, 귀싸대기 빨간 수줍음이 되고, 피멍든 가슴이 되면서, 서로의 의미가 되고 존재의 이유가 됩니다. 사람이 함께 살면 문득 슬픔이 찾아와도, 문득 기쁨이 찾아와도, 문득 아픔이 찾아와도, 문득 행복이 찾아와도, 함께 나누어 서로에게 추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 삶으로 이어져 오는 그 누군가의 삶이 있으며, 내 삶 또한 그 누군가의 삶 속으로 이어져 흘러가면서 <역사의 흐름>을 형성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사회의 그물망 속에서 내 삶과 얽혀 있는 그 누군가의 삶이 있고, 내 삶 또한 그 누군가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의 그물망>으로 연결됩니다. 삶의 흐름과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나와 너"라는 존재는 아주 소중합니다. 역사의 흐름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가 또 흘러가며 관계의 그물 망이 나로 인해 매듭지어지며 거대한 그물을 형성합니다. 만일 내가 없다면 이 사회의 그물망과 역사의 흐름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는 학생으로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은 내가 살아가는데 삶의 교사가 되고 있습니다. 나 또한 그 누군가에게 교사로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은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삶의 방향을 찾는 푯대로 삼습니다. 우리는 그 누군가의 학생이면서 그 누군가의 교사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교사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 누군가가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내 삶은 그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합니다. 우리 자신이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 누군가의 삶을 비추어 주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누군가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학생이 된다는 것은 늘 <겸손함과 낮춤>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로부터 단 한가지라도 배우기 위해 한없이 자기를 낮은 곳에 위치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어 배운다는 것은 돌멩이 하나라도 주워 담은 가방을 등에 메는 일과 같습니다. 쓸모 없게 생기고 무겁기만 한 돌멩이 하나를 주워담고 걸어가는 일입니다. 무척 귀찮고 힘이 들고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 쓸모 없었던 돌멩이가 결국에는 내 삶을 돕는 조력자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살면서 경험하는 실패조차도 큰 가르침을 줍니다. 삶의 실패나 시행착오는 좌절이나 포기의 의미로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과 "바로 그런 방법은 아니다"는 의미로 가르침을 줍니다.
네엣. 사람에 대한 그리움만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바다를 간절히 그리워할 때 여러분들은 스스로 배를 만드는 능력을 배우려고 할 것입니다. 넓고 끝없는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 할 줄 아는 사람만이 바다에 갈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 지는 저녁 노을의 모습을 미치도록 그리워 할 줄 아는 사람만이 배를 만드는 방법을 스스로 배우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군가가 배를 한 척 주는 혜택을 기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동경심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바다를 그리워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들은 스스로 바다를 찾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 바다 위의 석양을 구경하기 위해 배 한 척을 만들려고 온갖 연구와 노력을 할 것입니다.
바다를 간절히 그리워 할 때 배를 만드는 수고로움을 다하듯, 여러분들이 사람을 간절히 그리워할 때 세상의 희망을 만드는 실천을 하려 할 것입니다. 사람과 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만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인간에 대한 간절한 동경만이 사랑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을 기다리고 사람을 찾아 본 사람만이 사랑이 가득 찬 세상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사람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여러분의 꿈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담은 삶만이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다섯.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의 날인 ‘학생의 날’을 맞아 더운 마음으로 축하합니다.
‘선량(善良)하면서도 나약하지 않고, 냉철하면서도 비정(非情)하지 않고, 치열하면서도 오만하지 않는’ 그런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러분들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아끼고 끊임없이 가꾸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핏속에는 우리의 불행했고 안타깝던 근현대 역사에서 ‘당당하고 바르게 진리와 정의를 위해 행동했던 <학생>의 모습’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삶보다 앞선 역사 속에는 <우리는 피끓는 젊은이다. 올바른 것만이 우리의 생명이다>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 <학생>이었습니다. 바로 그 <학생>이 우신의 학생 여러분의 가슴속에 숨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 따뜻하게, 열정을 담아 여러분의 날, 학생의 날을 축하드립니다.
2007년 11월 3일 교무실에서 여름지기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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