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뒷모습을 누군가는 배운다.
어제 퇴근하다가 문자 메세지 한 통을 받았다. 14년 전 첫 담임을 하였고, 지금은 경기도 어느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졸업생의 소식이었다. “ 선생님! 건강하게 잘 지내시죠?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과 함께 했던 모둠일기 쓰기를, 제가 교사가 되어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종례시간에 한 편씩 읽어주고 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좋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담임을 하면서 십 몇 년간 모둠일기 쓰기를 하고 있다. 아이들의 생활과 삶을 담은 일기를 쓰고, 조회 종례시간에 읽어주면서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과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만 만나는 교사는 불행하다는 생각에 행복한 일을 가지고 만나고 싶었다. 문제 상황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잔소리하고 훈계하고 화내는 일이 전부였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만남을 갖고자 시작한 일기쓰기였다. 하지만 일기 속에서 나는 아이들의 수많은 사연과 아픔과 슬픔을 만났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삶은 아프고 슬프며 아름답게 나타났다.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의 성장의 고통을 보았고,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많이 배웠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교사의 소망은 아이들의 행복한 삶이란다. 모임일기를 쓰는 것은 교사의 영광을 위한 것도 아니고 업적을 남기기 위한 것도 아니란다. 모둠 일기 쓰기는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해 삶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단다. 아이들은 늘 성장의 고통 속에서 자기 삶을 가꾼단다.”
모임일기 쓰기가 누군가에게 이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교사의 삶은 자신도 모르게 그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교사의 뒷모습은 누군가에게 닮고 싶지 않은 반면교사가 되기도 하고, 정중한 가르침이 되기도 한다. 교실을 걷는 발자국 소리조차 누군가의 삶에 정성이 되기도 하고, 방해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되기도 한다. 올해도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들과 삶을 나누는 모둠일기를 쓰고 있다. 이 일기쓰기가 또 누군가에게 소리 소문 없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올해 종례시간에 읽었던 고등학교 3학년의 일기 한 편에서도 나는 한 아이의 삶을 만났다. 일기를 통해 만난 삶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면서 나의 삶으로 다가왔다.
제목은 <현실>이다. “지금 제 가슴 한 구석은 답답함으로 꽉 찼습니다. 시간은 흐르는데 실력은 오르지 않고 점수가 오르지 않아 생기는 답답함이 저를 괴롭힙니다. 답답함을 버리기 위해 운동도 해보고 친구들과 장난도 쳐보지만 답답함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다만 바다가 생각이 납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짠 냄새와 파도 소리가 나는 넓은 바다........그 넓은 바다에 가서 목 터져라 소리 질러 제 가슴 한 구석에 있는 답답함들을 던져 버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 바다에 갈 수 없습니다. 넓은 바다가 아닌 좁은 방, 그 방안의 의자에 앉아 앞에 놓여진 책상 위에서 책을 펴고 연필을 들고 공부를 합니다. 무척 바다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습니다. 이 작은 방안에서 답답함들을 꾹꾹 눌러버릴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제 현실입니다. 이게 고등학교 3학년인가 봅니다.”
고등학교 3학년의 아픈 삶이 이제는 행복한 삶으로 만드는 교육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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