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새로운 시작을 하는 친구들에게
봄바람이 꼬리에 불붙은 황소처럼 날뛰고 있습니다. 사립문을 뛰어넘어 무우 모종 심어 놓은 텃밭으로 달려 계곡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뒷발에 힘주고 돌더니 들판으로 내달립니다. 바람이 내질러 달릴수록 내 마음도 덩달아 고삐 풀려 먼 산 먼 자락 산을 넘어 달립니다.
봄은 탄생의 시간입니다.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 것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며, 껍질 안의 속살이 영글어 터지는 시간입니다. 속살은 껍질을 헤집고 삐져나오면서 부끄러운 탄성을 울립니다. 꽃샘추위 속에서 뚫고 태어나는 탄성, 그 순간에 탄생과 죽음은 함께 있습니다. 탄생은 그 무엇인가의 죽음이고 죽음은 그 무엇인가의 탄생입니다. 언 껍질이 떨어지면서 새 순이 돋아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봄은 시작의 의미로 마음에 새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봄의 시작은 겨울의 끝과 함께 있습니다. 시작은 곧 그 무엇인가의 끝이고,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일 뿐입니다. 잔설에 남은 언 발자국이 봄 햇살에 녹으면서 동토의 계절이 물러가는 법입니다.
봄은 탄생 너머의 화려한 풍경을 자랑합니다. 벚꽃은 싸락눈처럼 화려하게 낙화합니다. 통통하게 살 오른 햇살은 연한 녹색 물감을 번지게 합니다. 목련꽃은 화사한 자태를 뽐내다가 추락합니다. 탄생너머의 화려한 낙화는 비장한 각오이기도 합니다. 섣부른 탄생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는 봄꽃 핀 풍경을 좋아합니다. 봄바람 불고 밤새 비 내린 다음 날 아침의 산책을 좋아합니다. 나뭇잎 그늘 사이로 아침 햇살이 화살처럼 박히는 길을 산책하면 봄꽃 핀 언덕으로 소풍 갔던 친구들 생각이 간절합니다.
‘구체적 상황 속의 구체적 개인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고민하는’ 내가 봄꽃처럼 피어나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1. 좋은 사건을 일으켜야 합니다.
봄의 아침, 터질 듯 만삭의 버들강아지가 몸을 비틀며 머리를 내밀고 있습니다. 쪽지 틀어 올린 머리 다발처럼 예쁩니다. 며칠 전에 <홀랜드 오퍼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음악 교사로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떠나던 날, 제자들이 연주회를 마련해 줍니다. 그 자리에서 음악 교사였던 아버지는 벙어리 아들에게 노래를 불러줍니다. 존 레넌의 노래입니다. 울먹이는 음색으로 부르던 노래 속에 "인생은 계획을 짜는 순간부터 다가온다."는 가사가 나옵니다. 가슴에 새겨지는 노랫말이었습니다. 삶은 자기 스스로 중요한 방향을 정해 한 걸음을 걷는 순간부터 시작합니다. 스스로 방향을 정해 걸음걸이의 계획을 세우는 순간, 그 순간이 삶을 출발하는 최고의 순간입니다. 자기 삶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입니다.
역사의 중요한 시기에는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건은 계획과 의도에서 시작하여 오랫동안의 의지로 만들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역사는 발전하였으며 사람들의 삶은 성장하였습니다.
개인의 역사에도 아주 괜찮은 사건과 사고가 필요하며, 좋은 사건을 일으킬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의 삶을 바꿀 이 사건은 대나무의 마디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대나무가 바람에 쉽게 꺾이지 않는 것은 마디를 만들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역사에도 매듭이 되며 마디가 될 수 있는 사건을 일으켜 성장해야 튼튼하게 성장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삶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아주 괜찮은 사건을 일으켰으면 합니다. 꼭 사회의 변화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개인의 삶에 자유와 행복을 줄 수 있는 아주 괜찮은 사고를 치시기 바랍니다.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있을 때 등에 업고 병원에 달려가는 사건을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어디를 다쳤는지 어떻게 병원에 가야 하는지 가는데 택시비는 얼마나 드는지 생각하는 사람보다 안쓰러워 안타까워 종종걸음 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안쓰러워 발 동동 구르는 사람보다 손수건을 꺼내 흘린 피를 닦아주며 병원을 향해 업고 달리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은 주체적으로 좋은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내가 직접 가담하지 않았어도 책임을 느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았어도 용기를 내어 비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옆에 있는 사람의 아픔을 보았으면 합니다. 지금 바로 붙들고 있는 책 속에서 한 친구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그냥 봄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해 그 봄을 사는 존재입니다. 구체적인 상황속의 구체적인 개인으로 구체적인 말과 행동을 통해 사는 존재입니다. 그 사람은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서 세상과 만나며 세상 속에서 자기를 만들어 갑니다. 자신이 일으키는 구체적 사건 속에서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2. 책을 든 손이 가장 훌륭한 도서관입니다.
책을 들고 있는 손이 가장 훌륭한 도서관입니다. 헌 책방에서 책을 골라 버스를 타고 가면서 책을 읽습니다. 가슴은 울렁거립니다. 책을 잡은 손등에 힘줄이 솟고 손끝은 떨립니다. 책을 잡으면 힘줄이 솟고 떨리는 손, 그 손이 가장 훌륭한 도서관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의 일이었습니다. 서울로 유학 와서 생활하다가 여름방학에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걸어서 십 여리를 가다보면 동리 밖 느티나무가 반겨주었습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 몇 개가 풍경처럼 정겹습니다. 고향 집에 들어서면서 그 동안 헤어졌던 마당을 밟아보고, 낯설게 달라붙은 처마의 거미줄과 인사합니다. 축축하게 젖은 청솔 타는 연기로 기침을 하며 한 동안의 이별을 달래 봅니다.
그날도 어머니는 저녁을 드시자마자 피곤에 지쳐 쓰러지셨습니다. 점잖게 ‘잠을 잔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고된 노동을 하신 하루였습니다. 참깨를 털면서 싸락싸락 싸락눈 같은 슬픔을 털어낸 하루였습니다. 참깨가 쏟아질라 곧추 세워 들었던 탓인지 어깨가 결렸습니다. 펴 놓은 멍석에 싸릿단을 흠씬 두들겨 패면 새 모이 같은 참깨가 쏟아졌습니다. 이놈은 맞을수록 제 것을 털어냈습니다. 문지방 넘나들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도 털고, 세상 풍문으로 들리던 죽음의 부고도 털어냈습니다. 그렇게 달라붙은 시름을 털어내느라 지친 하루였습니다.
그날 저녁 호박꽃처럼 노란 달이 떠올랐습니다. 창호지 문틈으로 달빛이 새어 들었고, 덩달아 문풍지도 바람에 울었습니다. 체로 받쳐 만든 창호지를 통해 달빛은 어스름하게 방안을 비추었습니다. 어머니는 모로 누워 고단한 하루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어머니 손을 잡았습니다. 아, 그때의 충격, 까칠한 가시가 손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갈래갈래 굽이친 어머니 손금의 계곡이며 산 말랭이 능선에 돋아난 가시나무를 보았습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싸락싸락 모이 같은 눈물을 뿌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그 거친 손의 손톱을 한 번도 깎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손톱을 깎는 모습을 본적도 없었으며 실제로 깎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밭일에 호미질에 닳았기 때문입니다. 손을 생각하면 그때의 일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
3월 개학을 하고 나면 첫 시간 나는 아이들과 한 명 한명 악수를 합니다. 손잡고 악수하는 인사를 나눕니다. 찬 손이 있고, 따뜻한 손이 있으며, 굳은살이 박힌 손이 있습니다. 씨름을 하는 아이들과 피자배달하며 오토바이를 밤마다 타는 아이들의 손에는 굳은살이 박혀가고 있습니다. 약간의 옹이진 부분 몇 개와 단단함이 생활에 지쳐가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아픕니다.
3월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손을 잡던 내 경험을 전해주며 어머니 손을 잡아보고 그 느낌을 적어보며 아버지 발을 닦아드리는 숙제를 내줍니다. 내가 검사할 수 없는 숙제지만 잘 하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쑥스러워 어머니 손만 잡고 아버지 발은 닦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손을 잡아보며 어머니의 삶을 느끼고 아버지의 굳은 발을 통해 40년 이상 세상을 걸어온 그 삶을 느꼈으면 하는 바램에서 입니다.
요즘 내게는 손이 가장 훌륭한 도서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번 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교사 모임을 가지면서 책이 있어야 할 곳은 멋진 도서관의 책꽂이도 아니고 자기 집 서가의 맨 위 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서관 보다는 학급 교실이 학급 교실보다는 자기 집 서가가 자기 집 서가보다는 각자의 손이 가장 훌륭한 도서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방에서 책을 골라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잉크 냄새 맡으며 읽는 한 구절이 가슴에 남는 법입니다. 선생님한테 받은 책 선물을 넘겨보며 서문에 써있던 한 구절 " 뜻을 세워라" 한 구절이 가슴 밭에 심어지는 씨앗입니다. 저녁 시간 애인을 기다리며 카페에 앉아 읽는 한편의 시가 영화가 되고 심금을 울리는 가락이 됩니다. 여행 가방에서 가지런히 접힌 페이지의 한 구절이 영혼을 울리는 한마디가 됩니다. 손이 우리의 가장 훌륭한 도서관입니다. 손에 책을 들고 다니는 도서관의 풍경이 곧 다가왔으면 합니다
3. 친구란 상대의 슬픔과 아픔을 내 등에 짊어지고 가는 자입니다.
함께 파란 바람 소리를 들었습니다. 함께 쟁반만한 크기의 하늘을 바라다보며 하늘이 준 씨앗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함께 갈대가 넘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옷 맵시를 다듬으며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옷 안의 누덕누덕 기운 생활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우리는 친구입니다.
함께 걸었습니다. 동행입니다. 함께 걸으면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넘어진 그곳을 짚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배웠습니다. 비가 오면 쓰던 우산을 접고 함께 비를 맞으며 걸었습니다. 손이 얼면 장갑을 벗고 함께 찬바람에 손을 맡기며 걸었습니다. 우리는 친구입니다.
함께 길을 걸어 봅니다. 강바람이 뺨을 갈깁니다. 움켜쥐려면 빠져나가는 햇살처럼 도착했다 싶으면 가야 할 길만 자꾸 보입니다. 산을 넘으면 긴 밭 가득 알곡이 자라고 인심이 주렁주렁 열려 있을 거라 여겼지만 자꾸 심어 놓은 새싹이 꽃샘추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친구는 먼 산 진달래꽃 산말랭이를 오르자고 합니다. 언제 꽃이 저렇게 피었냐며, 진달래 꽃다지 엮어 세상에 전하자며 떠나자고 합니다. 무지개 잡으러 떠나는 입술 연한 소년처럼 들떠 있습니다. 그래, 함께 가야지요. 우리는 친구니까요.
높은 산에 오르고 싶습니다. 높이 올라 세상 굽어보며 내 발길 아래 모든 길을 두고 싶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자꾸 높은 산 보다 낮은 언덕을 넘고 사람 발길 드문 곳에 가자고합니다 사람발길 없는 곳을 자꾸 다녀 길하나 만들자고 합니다. 그래, 함께 떠납니다. 우리는 친구니까요. 위로 올라가지 말고 낮은 곳 흘러들어 사람 마음에 파고들고 밤이며 반딧불 같은 등불하나 밝히자고 합니다.
교육에 사람의 얼굴과 삶을 새기지 못하고 잔재주와 상품만 새겨 넣고 있는 현실입니다. 닮고 싶은 역할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사람의 얼굴하나 없습니다. 친구의 아픔과 슬픔을 먼저 보고 내 등에 짊어지고 걸어가는 친구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봄꽃 같은 눈망울에 담긴 어릴 적 놀란 가슴이 담겨져 있고, 고운 손가락 가시에 찔린 자국이 선연합니다. 주머니에 손을 감추며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말문이 막혀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다. 주머니의 왼손을 꺼내 악수를 청할 때까지, 먹먹하게 울리는 말문을 터서 운동장 가득한 고함을 내지를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함께 가야 할 친구입니다.
4. 새는 알의 껍질을 깨고 나오려고 몸부림 칠 때 세상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배움에서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줄(啐)은 ‘입’ 구(口)에 ‘갑자기’라는 의미를 갖는 졸(卒)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놀라 갑자기 소리 지르다’는 의미입니다. 탁(啄)은 ‘입’ 구(口)에‘두드릴 때 나는 소리’를 의성(擬聲)한 축(豖)의 소리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새가 부리로 쪼아 먹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줄탁(啐啄)의 줄(啐)은 닭이 알을 깔 때에 알속의 병아리가 껍데기를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 껍데기 안에서 쪼는 것을 의미하고, 탁(啄)은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선종(禪宗)의 공안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래 중국의 민간에서 쓰던 말인데, 임제종(臨濟宗)의 공안집(公案集 : 화두집)이자 선종(禪宗)의 대표적인 불서(佛書)인 송(宋)나라 때의 벽암록(碧巖錄)》에 공안으로 등장하면서 불가(佛家)의 중요한 공안이 되었습니다. 공안은 화두라고도 하는데, 깨우침을 위한 물음의 요체이자 수수께끼로, 책으로 말하면 제목과 같은 것입니다. 선을 수행하는 승려들은 하나의 공안만 가지고도 평생을 참구하기도 합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는 깨우침과 관련된 공안입니다. 병아리가 알 속에서 나오려면 먼저 스스로 알을 깨기 위해 부리로 알을 쪼아야 합니다. 그러면 알을 품던 어미닭이 소리를 알아듣고 동시에 밖에서 알을 쪼아 안팎에서 서로 쪼아대는 형국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이고, 어미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입니다.
새끼와 어미가 동시에 알을 쪼지만, 그렇다고 어미가 새끼를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미는 다만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작은 도움만 줄 뿐,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새끼 자신입니다. H.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병아리는 껍질을 깨고 나올 때 자유롭게 날 수 있다."도 이와 같은 뜻입니다.
닭이 알을 품었다가 달이 차면 알속의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그 반대로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마주 쪼아 껍질을 깨뜨려 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병아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팎의 두 존재의 힘이 함께 알 껍질에 작용할 때 비로소 병아리는 온전한 생명체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마치 어미 닭이 소중하게 알을 품듯이, 스승이 제자를 끊임없이 보살펴서 그 근기가 무르익었을 때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주는 겁니다.
5. 선인장의 꿈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할 때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리게 하여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나니,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그 기국과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 맹자 -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소임을 맡기려 할 때,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뼈마디를 부리며, 그 신체를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을 궁핍하게 합니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는 것은 그 마음을 움직여 인내심을 기르도록 하여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통의 의미를 새겨보았으면 합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난과 어려움의 길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 고난을 통해 우리를 단련할 수 있으며, 더 높은 인간의 가능성과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마음 속 깊은 곳에 고귀한 보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보석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나온 목적일 것입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보석은 깊은 곳에 ane혀 있습니다. 그 보석을 채굴하기 위해 우리는 수십 킬로미터의 지하로 파 들어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무 길도 없는 땅 속을 파내려가면서 우리는 보석을 발견할 거란 믿음만이 우리를 지탱해 줄 것입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 세상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그 속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처음 걷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또한 그 누군가에게는 이정표의 역할도 할 것이며 가서는 안 될 반면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롱펠로우는 <인생찬가> 중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生涯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도 숭고한 인생을 살 수 있으며, 떠날 때는 시간의 모래위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음을. 아아, 먼 훗날 다른 누군가가 장엄한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다 외로이 부서질 때를 만나면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 그 발자국을"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너무 희망적인 이야기입니다. 나는 묵묵히 땅속의 길을 뚫고 내려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이야기 하고 싶을 뿐입니다.
5.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 할 때만이 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가르쳐 줄 만큼 날고 싶어 하는가? 남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만큼 원하는 것이 있는가? 당신은 그 일을 남에게 가르쳐 줄만큼 원하고 간절해 하고 있는가? ” 요즘 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쓰임새가 있고 역할이 있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 똥은 땅 속에 스며들어 민들레 씨를 싹 틔우고 꽃이 피는 거름 역할을 합니다. 산에 버려진 굽은 나무는 밭갈이 할 때 소 등에 거는 멍에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세상과 사람들이 그 사람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 사람의 80년 인생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봄, 버들강아지처럼 피어나는 친구들의 소중한 쓰임새를 생각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에게 가르쳐주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런 일을 찾아서 떠날 것입니다.
봄, 3월의 새싹 같은 당신들의 더운 온기를 사랑합니다. 새벽 찬 기운을 더운 입김으로 녹여내는 당신들의 숨소리와 심장 박동하는 소리를 사랑합니다. 바다를 향해, 땅속을 향해 더운 숨결 내뿜으며 함께 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걸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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