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主之權-나의 철학

[同行] 오대산 산길과 구룡령 옛길 그리고 길을 걷는 사람

nongbu84 2009. 10. 20. 16:05

[同行] 오대산 산길과 구룡령 옛길,

그리고 길을 걷는 사람


 2009년 08월 03일부터 06일까지 3박 4일 동안 도보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산길을 넘고, 강원도 홍천군 내면 분소를 지나, 양양군 구룡령 옛길을 넘어 갈천리까지 걸었습니다.

 길을 걷는 일은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살이를 닮았습니다. 걷다보면 산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좁은 길을 지나고 넓은 길을 걷기도 합니다. 평편한 길을 걷기도 하고 높낮이가 심한 길을 걷기도 합니다. 자갈이 깔린 황무지를 걷기도 하고 포장된 길을 걷기도 합니다. 우리 사는 일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쉽게 지나는 일이 있으면 힘들게 지나는 일도 있습니다. 걷는다는 일은 자발적으로 가난과 불편을 선택하는 일이고, 채운 것을 비워야 하며, 허물과 껍질을 벗어야 합니다. 길은 욕심과 걱정으로 걸을 수 없습니다. 욕심과 근심으로 길을 걸으면 넘어지고 지칩니다. 무리하고 상처를 얻습니다. 내가 걸을 수 있을 만큼 걸을 수 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허락 받은 만큼 걸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욕심과 걱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마음으로 살 뿐입니다. 욕심과 걱정으로 채운 마음은 잡초만 무성할 뿐 나누어줄 곡식 한 톨 가꿀 수 없습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사랑과 정성으로 살 뿐입니다. 욕심과 근심 걱정은 사랑과 정성의 삶을 빼앗는 도둑입니다. 욕심과 근심이 삶의 도둑입니다. 욕심과 근심으로 살면 왜곡과 간섭과 질시가 가득합니다. 미워하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도보여행의 첫째 날(8월 3일)...........


  우리 동행은 동서울 터미널에서 오전 10시 50분 고속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차부에 13시 20분 도착하였습니다.  성냥갑 같은 버스 몇 대가 서 있는 차부를 지나 담배와 껌, 막걸리, 사탕 몇 개를 파는 송방(가게)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된장에 박은 무우 장아찌의 맛이 진하게 우러나오는 된장국에 밥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걸을 채비를 갖추었습니다. 간편한 운동화를 신고 체양이 달린 모자를 쓰고, 땀 닦을 수건을 목에 두르고 긴팔이 달린 윗도리에 긴 바지를 입었습니다. 14시 20분 진부면을 출발하여 도로 갓길과 둑방 길을 걸어 17시 30분 월정사 매표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도로의 갓길...........차가 지나는 도로의 갓길을 걷는 일은 여간 불편하지 않습니다. 차가 달리는 방향과 같은 방향을 보고 걸으면 위험합니다. 차가 뒤에서 달려오는 방향으로 걷지 말고 오는 차를 보면서 걸어야 안전합니다. 갓길에서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여유는 없습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여유 있게 만나 인연을 맺을 수도 없습니다. 차들은 굉음을 울리며 속력을 냅니다.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갓길에서 만나는 삶의 풍경은 속도와 편리에 익숙한 삶입니다. 앉아서 편안하게 빠른 속도로 가야 합니다. 목적지에 도달하더라도 경쟁과 이윤에 길든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인데도 아주 빠르게 달려가야 합니다. 걷다 보면 정체 구간인 길목에 서 있는 차들을 만납니다. 차 안에는 얼굴 가득 돈을 주고 산 피곤을 담고 가는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차가 다니는 갓길을 걸으면서 피곤한 사람들의 얼굴을 만나고, 그 얼굴에서 내 피곤을 보고 내 여유 없는 삶을 낯설고 아프게 만납니다.


둑방길............어스름한 시간 차도의 갓길을 벗어나 물길 따라 이어진 둑방길을 걷습니다. 주변 풍경이 겨우 눈에 들어옵니다. 강에서 석양빛에 어우러진 물안개가 피어오릅니다. 그 물안개처럼 둑방에 앉아 이야기 나누던 연애의 아픔이 정겹게 피어오르고, 젊은 날의 치기가 전설로 변한 싸움이 떠오릅니다. 안개로 덮인 둑방 길에 유년의 친구들이 어깨동무하며 앞서 걷고, 책보를 허리에 두른 계집애 하나가 뒤따라 걷고 있습니다. 과거의 추억이 경계를 허물고 현재를 걸음으로 넘어옵니다. 물안개는 강물에서 피어 둑방을 넘고 둑방 안의 밭을 덮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덮습니다. 강물과 땅의 경계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경계를 만듭니다. '내 것'이 무너질까 두려워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고, ‘내 자식’에 대한 지나친 간섭의 벽을 세워 세상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길을 막습니다. '우리'의 울타리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통로 없는 사각의 건물을 세우고, 마음에도 벽을 세워 사람을 멀리하고 사람과의 교감의 통로를 막습니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의 마음과 마음으로 흘러가는 마음의 길이 있습니다. 걸어가기 위한 발길(道路)이 있고, 말이 가야할 말길(言路)이 있듯, 사람의 마음도 가는 길이 있습니다. 발길이 막히면 발길질을 하고, 언로가 막히면 풍자와 해학, 냉소와 욕설이 난무하듯, 마음의 길이 막히면 마음의 병으로 자리 잡습니다. 마음 가득 미움과 분노가 찹니다. 둑방 길을 걸으면 경계를 덮는, 경계를 허문 안개의 장관이 펼쳐집니다. 둑방길을 걸으면 내 마음은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허물고, 마음과 마음의 벽을 허문 길이 열립니다.

 둑방을 덮었던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면 둑방 길은 넘실대는 강물과 배추를 가득 심은 밭의 경계선으로 나타납니다. 강물은 둑의 경계를 무너뜨릴 기세로 달려듭니다. 육중한 몸을 뒤척이며 둑방을 툭툭 치며 거들먹거립니다. 강물은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씩씩거립니다. 하지만 둑방은 찰랑찰랑하는 소리로 되받아칠 뿐 배추 가득 심은 밭을 꼭 붙들고 있습니다. 둑방은 힘줄 같은 나무뿌리가 튀어 오르더라도 꼭 붙든 밭을 놓지 않고 지킵니다. 둑방 안쪽으로 밭의 굴곡을 따라 자리 잡은 배추가 가득 앉아 있습니다. 배추밭은 넘실넘실 흥겨운 리듬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만듭니다. 둥그렇게 겹겹이 감싼 배추의 자태가 아내의 탐스런 엉덩이를 닮았습니다. 포기 안에서 생명의 맥박이 뛰고 있습니다. 둑방 길을 걸으면서 떨어질 수 없는 둑방과 밭의 인연처럼, 헤어질 수 없는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둑방을 걸으면서 슬픔과 아픔을 내 등에 짊어지고 가야 할 사람들, 두 아이와 한 여자를 소복한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밤길...........첫날 도로의 갓길과 둑방길을 따라 13KM를 걷고 월정사 매표소 뒤편에 자리 잡은 형제 산장에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저녁 식사로 월정사 매표소 오른 쪽에 위치한 보배식당에서 온갖 종류의 산나물에 동동주를 마셨습니다. 산나물은 가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나물의 쓴 맛과 향은 혀끝을 자극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일행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월정사 전나무 길을 걸었습니다.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눈에 보이던 것들의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나무며 돌멩이며 꽃들이 사라졌습니다. 전나무 숲 위로 달이 떴지만 무리를 이루어 어깨건 전나무 숲길을 밝혀주지 못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가만가만 소리가 울렸습니다. 새떼가 지저귀는 듯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발정 난 짐승이 울부짖듯 달빛의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람은 흐느끼며 숲을 파고들고, 어둠 속에서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울렸습니다.

 어둔 밤길을 걷는 일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알려줍니다. 눈으로 보는 것들은 늘 경계와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음은 경계와 한계 너머의 소리를 들으며, 그 울림을 들을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소리로 말하며, 향기로 다가오고, 의미로 찾아옵니다. 어둔 밤길을 걸으면 한계와 경계 너머의 삶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솔향기를 지닌 사람이 마음속으로 걸어옵니다.


 걷는다는 일은 자발적으로 가난과 불편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걸으면 얼굴과 몸에서 땀이 흐릅니다. 발바닥은 뜨거워지고 물집이 잡히기도 합니다. 걸을 때 무겁고 필요 없는 것들은 몸에 무리를 줍니다.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인정합니다. 배낭에 넣은 많은 음식은 배를 아프게 하고, 지나치게 많이 마신 물은 갈증을 더 일으킵니다. 꼭 그만큼의 물과 음식만을 몸에서 허락합니다. 걷는다는 것은 욕심으로 채운 무거운 것들을 버리고, 근심 걱정으로 채운 불안한 것들을 버려 가난한 마음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걷는 일은 가난한 마음을 배우며 내 몸에 허락된 만큼 정성을 다하여 걷는 일입니다.



도보여행의 둘째 날(8월 4일)........


  어제 저녁을 먹은 보배식당에서 황태 된장국에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황태 된장국은 황태가 감자와 어우러져 구수한 맛이 났습니다. 감자의 구수한 맛과 매운 고추 맛이 혀끝에 감겨들었습니다. 지금도 황태된장국의 맛을 생각하면 입 안 가득 침이 고입니다. 맛은 기억으로 남고, ‘맛있다’는 표현은 맛있게 먹었던 경험을 떠올리는 일입니다. 보배식당에서 산나물비빔밥을 점심으로 마련한 후 오전 7시 30분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과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오르는 비포장 신작로를 걸어 오전 9시 30분 상원사에 도착하였습니다. 상원사입구에서 잠시 쉰 후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오대산 산길을 넘어 홍천군 내면 분소에 15시 30분 정도에 도착하였습니다. 내면 분소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민박집에 하루 여장을 풀었습니다.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월정사 입구의 새벽 숲길은 찬 공기가 물안개 되어 계곡을 타고 오릅니다. 줄지어 선 전나무들이 길을 만들고 그 안을 걷습니다. 월정사 새벽 숲길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닙니다. 늘그막의 두 내외가 걷든 중년의 부부가 걷든 젊은 연인이 걷든, 함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길입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걷는 일은 손을 잡는 그 찰나의 순간을 사는 일입니다. 함께 손을 잡은 그 순간은 상대의 아픔과 슬픔을 잡는 바로 그 시간입니다. 손이 맞닿은 그 자리는 살아오면서 옹이처럼 박힌 상처가 드러나는 곳이고, 그 상처와 내 마음이 맞닿는 자리입니다. 내가 만든 예리한 칼날에 도리워진 상대의 상처가 굳은 살점의 예리한 날이 다시 내게로 옮겨지는 지점입니다. 서로 잡은 손으로 상대의 아픔과 슬픔이 핏줄을 타고 고스란히 흘러옵니다. 두 사람이 잡은 손 사이로 고목으로 변해 참회하는 전나무의 눈물이 들어옵니다.

 고목으로 변한 전나무는 아주 오랜 시간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두 팔 든 채 서 있습니다. 어깨동무하던 친구들이 떠난 외로운 시간을 벌거벗은 나목으로 서서 벌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겨울 내내 언 땅에 발목을 집어넣고 서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발이라도 동동 구를 수 있다면 언 발이 풀릴 만도 했지만, 얼어붙은 땅에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잎사귀 달 수 없는 고목이 되어서야 겨우 새벽 햇살을 받으며, 제 잎사귀 없는 가지를 잘라내고 있습니다. 위로만 치솟아 오르려다 밟혀 죽은 영혼들의 아우성이 전나무를 흔들어 가지를 꺾고 있습니다.

 전나무 숲길에는 고목으로 변해 무릎 꿇고 두 손 든 전나무의 참회가 있고, 그 참회를 감싸 안는 용서가 있습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걷는 일은 두 손 맞잡아 부끄러운 삶을 성찰하는 일입니다. 월정사 전나무가 도열한 새벽 숲길에서 두 사람이 잡은 손, 그 손이 맞닿은 그 지점에서 참회의 수액이 배어나옵니다. 벌거벗은 나목으로 참회의 눈물을 새벽마다 흘립니다. 참회의 눈물이 손에 배는 경건한 시간입니다. 상처 준 것들의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하는 시간이 두 사람이 잡은 손에 파고듭니다. 내가 휘두른 칼날에 도려진 살점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산산히 부서지고, 그 살점이 칼날을 감싸는 칼집으로 변하는 용서가 있습니다. 월정사 숲길은 참회와 용서의 길입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니라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걷는 길입니다. 서로의 상처를 느끼며 아픔과 슬픔을 느끼고, 내가 준 상처를 되받아 참회하는 길입니다. 월정사 숲길은 고행으로 얼룩진 삶이 있고, 고통스러워 상처 준 삶이 있고, 다시 용서를 비는 삶이 있고, 용서를 하는 부처가 마음에 자리 잡는 길입니다. 숲길 입구까지 마중 나온 부처를 만나 함께 걷는 길입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 바로 용서와 관용의 부처입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숲길.......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오르는 길 양 옆으로 나무들이 줄지어 서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숲 사이로 비포장도로가 열렸고, 가끔 덜컹거리는 버스가 지나가고, 가끔 주먹만 한 바람이 가슴을 치고, 가끔 여우 오줌 같은 햇살이 숲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가끔 햇살이 길 위에 드러눕기도 합니다. 가끔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원사로 오르는 길 양 옆으로 소나무와 참나무와 전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서로 어깨 걸고 촘촘히 서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가끔 숲을 떠난 나무들은 나무를 찍는 도끼 자루가 되기도 하고, 집을 떠받치는 중대한 일을 맡은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나무들은 서로가 서로의 바람막이를 하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주고, 서로가 의지하는 숲으로 살아갑니다. 숲이 되어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 숲의 향을 발라줍니다. 떠난 것들이 되돌아와 향을 맡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줍니다. 솔 향이며 참나무향이 어우러져 잘린 상처까지 감싸주고, 잘린 밑둥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시간을 기다려줍니다. 나무가 모여 만든 숲에 햇살이 쉬어 가고 달빛도 쉬어 갑니다. 바람이 찾아와 둥지를 틀고, 비바람이 내려와 사뿐하게 앉습니다.

 상원사로 오르는 길 옆 숲은 바로 그 시간 그 자리에 서서, 바람이 지나며 사람이 걸으며 시간이 흐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숲은 그 자리에 모여 살아가면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나눔과 협동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나눔은 숲처럼 그 자리에서 하는 일입니다. 나누는 삶은 붙들고 쫓아가는 일이 아닙니다. 바로 그 시간 그 자리에서 함께 마음을 나누고 함께 삶을 겪으며, 함께 처지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신작로 옆 숲은 그 자리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넓은 집을 소유하고, 상표 있는 차를 소유하고, 자랑하기 위해 지식을 축적하고, 각종 모임을 만들어 허세를 드러내며, 허명을 쫓아다니며 껍데기를 소유합니다. 소유하기 위해 경쟁하고, 경쟁하기 위해 떠납니다. 밟고 밟히는 무한한 도전을 아름다운 용기로 치장하면서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자신이 있어야 할 사람 마음을 떠납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은 경쟁하기 위해 자신을 떠나는 일이 아닙니다. 창고를 채우고, 부와 명예를 소유하고, 인기를 소유하려 이동하고 떠나는 삶이 아닙니다. 자신을 떠난 삶속에 사랑하며 나누는 삶은 없습니다. 숲처럼 떠나지 않고 나눌 때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신작로.............상원사로 가는 신작로는 우리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길입니다. 장마 비에 젖은 살림살이가 햇볕에 고스란히 드러난 채 마르듯, 소유하며 경쟁하며, 진흙에 빠지며 젖었던 시간들이 신작로에 그 모습을 드러낸 채 바짝 마르는 시간입니다. 신작로 위에 숲의 그림자가 드러누워 몸을 뒤척이며 흔들립니다. 숲의 그림자는 흔들리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나침반의 바늘이 파르르 떨며  북극을 가리키듯, 신작로 위의 그림자는 길 위에서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흔들리는 그림자의 모습 속에서 흔들리며 사는 나를 만납니다. 젖은 삶을 말리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자화상을 만납니다.


걷는다는 것은 가득 채운 것들을 버리는 일입니다. 욕심으로 채운 것들을 비우고, 걱정으로 매듭 지웠던 것들을 풀고, 집착으로 움켜쥐었던 것들을 놓는 일입니다. 채운 것들을 비워야 들어올 수 있는 빈자리가 생깁니다. 마음에 채워 불안하게 지켜야하는 것들을 버리고,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채워 불편한 것들을 비우고, 내 것이 아닌 것들을 채워 헛부른 배를 꺼야 합니다. 걷는다는 것은 내 몸을 비우고 내 마음을 비워 비로소 자기를 만나는 것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부른 헛배를 끄고 허명을 버리고 욕심과 근심을 버려 가벼운 자기를 만나는 일입니다.  


오대산 자작나무 산길............상원사에서 두로령을 넘어 홍천군 내면 분소로 걸었습니다. 산길에는 푸른 하늘과 짙은 녹음과 고운 색깔의 꽃들이 피었습니다. 빨갛고 노란 꽃들의 색감은 초록의 녹음과 어우러져 풍경을 만듭니다. 에돌고 에돌아 넘는 형형 색깔의 산길에서 나도 풍경 속의 하나가 됩니다. 산길을 오르는데 20대 중반의 여자가 지나갑니다. 한참을 지나 서른 남짓한 사내가 지나갑니다. 서로가 토라진 연애의 모습입니다. 나는 그 연애의 배경 하나로 그들과 엇갈려 지나갑니다. 길을 오르다가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쉽니다. 오대산을 넘는 가족을 만납니다. 초등학생인 아들과 중학생인 딸, 대학생 아들, 그리고 부모가 대학생 아들의 군 입대를 앞두고 가족여행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식과 이별하는 시간조차 삶입니다. 묵묵히 걸으며, 군더더기 없이 서로를 염려합니다. 나는 산에서 그 가족여행의 배경 일부가 됩니다.

 두로령에서 아침에 준비한 산채 비빔밥을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산 벌레조차 달려들며 맛보고자 합니다. 오대산 팔부능선의 길옆에서 자작나무가 허물을 벗고 있습니다. 여름에 성찰 없이 성장한 만큼, 자작나무의 껍질이 트고 있습니다. 자작나무는 분바른 몸매를 자랑하고 화려한 무늬를 뽐냅니다. 하지만 자작나무는 그 사라지는 무늬의 운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작나무는 무늬의 사라지는 운명을 화려한 문양으로 온 몸에 새겨 넣습니다. 잘려나간 가지 끝의 상처에서 아문 옹이를 문양처럼 만듭니다.

 

자작나무의 허물 벗기.........자작나무는 새살 돋는 봄을 지나, 마음껏 성장한 여름을 거쳐, 터질 듯 공허한 가을을 보내고, 풍찬노숙의 겨울을 견디면서 옹이를 만들며 살고 있습니다. 자작나무는 팔부능선의 아찔한 비탈에서 세월을 지키며 곧 사라질 화려한 문양을 만들고 있습니다. 허물 벗는 계절에는 가지에 산새 한 마리 앉아도 휘청댑니다. 세상 후려치는 회초리가 되지 못한 채 깊은 산속 어둔 밤을 풍상과 동무되어 세월을 겪습니다. 세상 떠받치는 대들보가 되지도 못한 채 바람 불면 그냥 가지 꺾여 세상에 내어줍니다. 흰 눈 속의 대나무의 가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봄날의 버들강아지처럼 냇가에서 한가롭게 놀 수 있는 여유도 없고, 어지러운 세상의 목검이 되어 세상을 베지도 못한 채, 계곡부터 치고 오르는 찬바람 고스란히 맞으며 산의 팔부능선에서 세월을 겪을 뿐입니다. 산의 맨 끄트머리를 붙들고 흔들리면서 곧 사라지는 껍질의 무늬로 지나가는 길손의 배경이 될 뿐입니다. 외로운 만큼 메마른 버짐을 피어 올리며, 허물을 벗으며, 옹이진 자리에서 사라지는 문양을 만들 뿐입니다. 휘청휘청 멋진 춤사위도 놀리지 못하면서 하늘이 부끄러워 제 허명의 껍질을 벗기고 서 있을 뿐입니다.


걷는다는 일은 허물을 벗는 일입니다. 세상 움켜쥘 손아귀의 힘은 없어도, 세상의 중심에서 소리 질러 세상 곳곳으로 퍼지는 울림을 만들지 못해도, 사람들을 조아리게 만드는 눈빛을 갖지 못해도, 그 잘난 싸움하나 못해도, 성찰 없이 덧붙여진 것들의 껍질을 벗는 일입니다. 걷는다는 일은 허명의 껍질을 벗어 속살을 드러내고, 그 속살이 풍상과 세월을 겪어 옹이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 옹이로 자작나무의 무늬를 만들어 길손의 풍경으로 사는 일입니다.

 걷는다는 일은 허명의 버짐이 껍질처럼 일어나면 떼어내는 일입니다. 세상에 이름 석 자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지 못해도, 세상의 모순을 해결한 사상은 없어도, 아물고 있는 상처의 피딱지를 떼어 속에 든 허명을 게워내는 일입니다.


오대산을 내려가는 길..........오대산 두로령을 넘어 내려가다 보면 장마로 무너진 흙덩이가 길을 막습니다. 흙덩이 위로 소나무 뿌리가 하늘을 향해 뽑혀 있습니다. 소나무가 허리 부러진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산은 사람을 감싸는 넉넉한 품을 지녔지만, 허락하지 않은 것들의 방문은 허락하지 않고 분노합니다. 허락하지 않은 소리가 들리면 자기 살점을 도려냅니다. 허락하지 않은 사람들이 방문하면 자기의 한 귀퉁이를 통째로 떼어내어 화난 모습을 드러냅니다. 허락하지 않은 발걸음이 찾아오면 길을 막고 나무의 가지를 하늘로 뻗어 잘려나간 상처를 보여줍니다. 산이 허락해야 그 산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산이 방문을 허락해야 마중 나오고 배웅하며, 그늘을 주고 길을 내주며 걸음을 걸을 수 있습니다.  산은 받아들일 만큼 살아가며, 받아들일 수 없으면 그만큼을 잘라냅니다. 산은 자신에게 허용되지 않은 삶 이상은 살지 않으며, 허용되지 않은 치장은 하지 않습니다.


한낮의 오후 홍천군 내면 분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넘어가는 석양을 보며 민박집에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민박집 아주머니의 타령곡조가 막걸리 잔에 넘쳤습니다. 산을 타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며, 막걸리 잔을 내미는 아주머니의 손끝에 험난한 세월이 묻어있습니다. 아주머니는 연기 지망생으로 애꿎은 날을 겪는 딸의 소식을 이야기하면서 웃다가 울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슬프고 아린 삶의 곡조를 듣다가 취했습니다. 밤하늘에서 이야기를 엿듣던 달빛도 취했습니다. 밖에서는 산바람이 도둑걸음으로 산길을 걷다가 달빛에 걸려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도보여행의 셋째 날(8월 5일)...........


  희망 근로로 하루 2만 5천원을 받는 내면 분소 근처 민박집 주인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아침 7시 강원도 홍천군 명개리에 도착하였습니다.  구룡령 옛길로 올라가는 입구입니다. 출발에 앞서 신발 끈을 묶는 동행의 등 너머로 배추가 가득한 밭이 넘실넘실 춤사위를 자랑합니다. 개울 건너의 농가에는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휴가를 맞아 고향집을 방문하였나봅니다. 마당가에 가마솥을 걸고 장작불을 피워 한참 굴뚝의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가마솥의 국 냄새가 개울을 넘어옵니다. 농가의 마당 가운데 멍석을 깔고 형제들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아침밥을 먹고 있습니다.



구룡령 옛길...........구룡령으로 오르는 명개리 입구는 사람들의 발자취가 오래된 듯 웃자란 풀과 가시 덩굴이 울창하게 엉겨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는 길을 막는 듯합니다.  축축한 거미줄이 얼굴에 닿아 아침의 찬 기운을 그대로 전해줍니다. 이 길로 마차를 끌고 수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습니다. 옛날 이 길을 넘던 삶 속에도 거미줄이 얼굴에 닿는 찬 아침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슬을 걷어차며 바지 가랑이 흠뻑 젖는 발걸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구룡령 옛길은 양양과 홍천을 연결하는 옛길입니다.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보다 산세가 평탄하여 양양, 고성 지방 사람들이 한양을 갈 때 이 길을 자주 이용하였습니다.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넘나드는 길이고, 양양, 고성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한양으로 갈 때 넘던 길입니다. 이 길을 넘으면서 용의 영험을 받아 과거 급제를 기원하였습니다. 구룡령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고개를 넘다가 험한 산세에 지쳐 갈천리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아흔 아홉 구비를 돌고 돌아야 오르내릴 수 있는 길은 울창한 금강소나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금강 소나무............수천 년을 풍상 속에서 살아온 금강 소나무가 깊게 패인 주름 속으로 찬바람을 받아들입니다. 금강 소나무는 어둠 속 비탈진 땅에 발가락 같은 뿌리를 뻗어 자신을 지탱하고 살아왔습니다. 질풍의 기세에 가지 잘려 흐른 피가 솔 광으로 뭉쳐있습니다. 솔 광은 어둠 속을 밝히는 불빛을 감추고 있습니다. 금강 소나무는 자기 그늘 밑으로 살짝 길을 터줍니다. 아흔 아홉 구비를 돌고 돌아 오를 때 쉬어갈 그늘을 만듭니다.

 구룡령 옛길에는 산을 넘던 사람들의 삶이 있습니다. 이른 새벽 떠난다는 기척도 없이, 돌아온다는 약속도 못한 채 길을 떠나, 무사안녕하면 밤늦은 시간 다시 아내의 이불로 돌아왔을 삶입니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 떠남도 돌아옴도 없이 그저 산을 넘었고, 넘다가 불구의 생을 마감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불완전한 삶을 지탱하며 살기 위해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달렸을 것입니다. 구룡령 옛길에는 무덤 속으로 파고드는 소나무의 뿌리를 막으려고 장례식 하관 때 회다짐으로 쓰던 횟가루를 생산한 ‘횟돌반 쟁이’가 있고, 군 경계를 만들기 위해 홍천군 명개리까지 양양 수령을 업고 뛰다 돌아오는 길에 지쳐 죽은 젊은 청년의 무덤인 ‘묘반 쟁이’가 있습니다. 굵은 금강소나무의 모습이 담긴 ‘솔반 쟁이’ 가 있습니다.

 구룡령 옛길은 서양의 시지프스처럼 돌멩이를 밀어 올려 다시 굴러 떨어지는 무의미한 삶의 부조리가 있는 곳이 아니라 아프고 슬픈 삶이 있습니다. 돌멩이를 굴려 올리는 근육질의 팔뚝이 아니라 산을 넘는 잰걸음이 있고, 잰 걸음마다 달고 다닌 세상사의 풍문과 사람 소식이 있고, 등짐을 지고 넘는 가쁜 숨소리가 있습니다.


  오후 2시 갈천리에 도착하여 약수터 근처의 휴게소에서 민물고기 매운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동동주에 취한 나른한 오후였습니다. 택시를 타고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낙산사 앞바다에 갔습니다. 바다에는 여름철 막바지 휴가를 즐기는 인파로 가득했습니다. 바닷가의 횟집에서 저녁을 먹고, 서울에 두고 온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걸어가는 삶의 길을 이야기했습니다. 분노가 있고, 아픔이 있고, 따뜻함이 있고, 이해와 용서가 있는 자리였습니다. 어촌계에서 제비뽑기로 정한 맨 끝 횟집에서 주인아주머니의 바닷물처럼 짜고 비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팔 걷어붙이는 싸움이 있고, 생목 쓰는 욕설이 있고, 잡아끄는 장사수완이 있고, 냉정하게 등 떠미는 매운 맛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낙산사 근처의 펜션에서 하루를 더 묵었습니다. 아프다며, 화난다며, 이해해주지 못한다며, 혼자 사는 게 아니라며, 소리 지르며 밤새 세상에 싸움을 걸었습니다. 모든 시비를 동행은 받아주었습니다. 함께 걸어온 길, 함께 걸어갈 길, 악다구니 쓰는 내 소리를 들어준 동행이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마지막 날(8월 6일)...........

  

  이른 아침 버스정류장에서 앉아 서울행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읍내로 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정류장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서도 인연과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함께 사는 정겨움입니다. 나도 함께 걸어온 길 동행이 있어 행복하고, 걸어가는 길 계속 동행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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