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다 돌아간 교실, 빈 책상과 의자마다 주렁주렁 눈망울이 여백으로 남아있다. 칠판에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을 적는다.
<칠판에 쓰는 편지>
친구들아! 너희들에게 이렇게도 반성문을 쓰는구나. 언젠가 너희들의 반성문을 받으면서 나는 그 반성문이 나를 가르치는 스승일 수 있음을 깨달은 적이 있단다.
하나. "선생님! 제가 매를 맞아 변할 아이 같았으면 벌써 매를 맞았겠어요"
시형(가명)이란 아아가 가출과 방황을 하고 등교하여 반성문에 쓴 내용이란다. 시형이가 이야기 했던 매를 맞아 변할 것 같으면 매를 맞아서라도 자기를 변화시키고 싶었던 아이의 심정을 나는 알지 못하였단다. 시형이는 나보다 더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었을 것이란다. 자신이 일상생활에 반항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내었던 것은 상대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과 자기 삶에 대한 분노였음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단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상대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분노와 미움의 표현이란다. 상대속에서 정말 자신이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화를 낸단다. 자신과 닮은 모습을 발견하고 화를 내는 것이란다.
우리가 너무도 게으름을 피우고 집에 들어간 날,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내 등을 쓰다듬으며 하루 고생했구나 하실 때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란다. 그런데 그때 "오늘 또...."하고 꾸중을 한다면 바로 내 모습속에서 내가 버리고 싶었던 그 모습을 들추어낸다면, 그 부끄런 자화상을 자꾸 이야기하면 화를 낼테지.........
시형이는 자신에 대한 미움을 갖고 있었단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변화를 너무나도 원했던 아이였단다. 매를 맞아서라도 자신이 미워하는 모습을 털어내고 싶었던 아이였단다. 그 시형이를 통해서 나는 아이들의 상처를 들추어내는 방법보다는 아직 드러나지 않아 감추어져 있는 장점을 찾아주는 방법을 선택하였단다. 공자가 사랑(인)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어진 벗을 많이 사귀는 즐거움과 예악을 함께 하는 즐거움>과 <사람의 선한 것을 말하는 즐거움>을 이야기했듯, 드러난 단점속에 숨어있는 장점하나를 발견하는 길이 교육의 길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단다. 정말 사람을 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선한 것을 찾아내어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인정하고 존중하여 세상을 향해 그 장점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일이란다.
영양제가 좋다고 하여 식사 대신 영양제만 먹으면 타고난 소화력을 잃게 되는 이치와 같듯, 순간적인 영양보충이나 충격요법으로는 사람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단다. 바로 자기 스스로의 소화능력을 길러내는 일이란다. 바로 자기 자신의 삶과 경험을 스승으로 삼아 끝없이 반성하고 검토하여 자신의 변화를 추동하는 일만이 자신의 미움을 던지고 자신의 일에 성의정심할 수 있는 길이란다. 사람은 그 누군가의 스승이고 그누군가를 스승으로 삼아 살아가지만 내와 남이 스승이 될 수 있는 출발점은 자신이 자신을 가르치는 스승의 모습이란다.
두울 "선생님! 제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줄 아세요? 중학교2학년때 교실에서 장난치다가 선생님한테 불려간 적이 있어요. 선생님은 저희들을 엎드리라고 하고 매를 대는 데 맨 나중에 엎드려 있던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는 때릴 가치도 없는 녀석이다. 그냥 가거라.>그말을 듣고 저는 제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은 줄 아세요. 세상에서 미움조차 가져주지 않는 선생님들이 너무도 미웠어요. "
재완(가명)이란 아이가 반성문에 썼던 내용이란다. 사랑의 반대어는 미움이 아니란다. 바로 무관심이란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관심이 얼만만큼 지속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고 얼마만큼 정성을 오랫동안 기울일 수 있는가의 문제란다. 재완이는 인정을 받고 싶고 관심을 받고 싶어했단다. 세상에 의지할 단 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그런사람이 없고, 오히려 관심조차 기울이고 싶지 않다는 처절한 선언만이 가슴을 에려냈을 것이란다. 자신을 인정해줄 단 한명의 사람도 없다는 사실,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줄 단 한사람의 사람도 없다는 현실, 그 현실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을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단다.
어린왕자라는 책에서 어린왕자에게 장미꽃이 그렇게도 소중했던 것은 그 장미꽃을 가꾸는데 투자했던 시간의 양과 비례한단다. 장미꽃을 위해 물을 주고 고깔을 씌워 햇빛에 말라죽지 않도록 그늘을 만들어주고 그렇게 정성을 기울인 결과 어린왕자는 장미꽃이 너무도 소중했단다. 우리네 인생도 알고보면 얼마만큼 자신이 원하는 일에 정성을 온전하게 기울이고 관심을 오랫동안 기울였는가의 문제란다.
재완이도 자신에게 아주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줄 세상의 단 한사람을 찾고 있었고, 단 한번만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줄 수 있는 단 한사람을 찾고 있었단다. 재완이의 반성문을 읽으면서 나는 교육이 바로 들어주는 정성이고 이야기하는 진실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단다. 아무리 뛰어난 기교를 부리고 허장성세로 아이들에게 덧칠하여도 결국 교육은 정성과 진정성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일임을 부인할 수 없단다.
친구들아!
사람은 스스로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장 미워하는 자신의 일부분까지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이 중ㅇ요하고, 그 변화의 출발점은 자신의 못남과 아픔을 인정하는 일에서 출발한단다. 알고보면 자신의 못나고 어눌한 부분도 바로 자신의 일부분이란다. 자신의 마음아픔과 슬픔 바로 그것이 자신이고 자신의 모습이란다. 자신의 미움까지도 인정하고 이해하고 꼭 껴안고 사랑하거라. 그래야 자신의 못나고 미워하는 부분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단다.
친구들아!
산다는 것은 관심의 지속성과 정성의 온정성속에서 그 누군가와 그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는 걸음걸이에 있단다. 아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소처럼 걸어가고 되새김질 하듯 걸음걸이를 음미하고 검토하거라. 그래야 자신이 이 세상에 땅을 딛고 서있음에 감사할 수 있으며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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