啐啄同時-나의 교육

교사와 학생의 사이, 일기일회

nongbu84 2011. 1. 24. 08:50

 

 

 

교사와 학생의 사이, 그리고 일기일회


교사  박  승 균

1. 교사의 이름으로


나는 교사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과 정의와 행복이 온전하게 보전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당하게 억압과 착취를 받지 않고, 함부로 위협과 협박을 받지 않으며, 강제적으로 구속과 간섭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자유 속에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  차별받지 않고, 공평한 기회 속에서 땀 흘려 노력하면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좋은 환경 속에서 좋은 뜻을 지닌 이웃들과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모두가 등 따뜻하고 배부른 세상에서 마음을 넘나들며 행복하게 살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나는 교사의 이름으로 이 땅의 학교에서 사계절이 순환하는 가운데 자연이 주는 지혜를 배워 실천하기를 희망합니다. 학교 교정에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무럭무럭 성장하며 가을이면 잎이 물들고 떨어지며 겨울이면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렸으면 합니다. 교사와 학생의 삶에서 봄에는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는 땀 흘려 일하고 가을에는 곡식을 거두고 겨울에는 거둔 열매를 나누어주기를 희망합니다. 교사의 학생의 삶에서 봄에는 뜻을 세우고 여름에는 뜻을 이루려 하늘도 감동할 정도의 정성을 들이며 가을에는 성찰 없는 여름의 성장을 반성하고 검토하며 겨울은 가난한 마음으로 욕심과 집착을 버리며 살기를 희망합니다. 

나는 교사의 이름으로 이 땅의 학교에서 온전한 가치가 보전되기를 희망합니다. 경쟁 속에서 승리하는 “수직 상승의 꿈”보다는 협동 속에서 부족함을 감싸 안는 “수평 확장의 꿈”을 지향하였으면 합니다. 혼자만의 편안과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쟁보다는 함께 살 수 있는 불편을 선택하는 결단이 보전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이 직접 가담하지 않은 일에도 온전하게 책임지며, 자신이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았어도 부당함을 비판하는 용기가 보전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교사의 이름으로 내 삶이 온전하게 보전되기를 희망합니다. 명예를 얻거나 권력을 움켜쥐는 유혹에서 벗어나 자본의 모순에 휘말리지 않고, 온전하게 아이들의 삶을 볼 수 있는 교사의 눈을 갖고 살고 싶습니다. 혼자만의 이익과 당장의 편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기보다, 아이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우러나오는 양심의 소리를 듣고 아이들의 마음에서 외치는 절규를 들으며, 침묵 속에서 울리는 준엄한 경고를 듣는 교사의 귀를 갖고 살고 싶습니다. 거짓과 허위를 이야기하기보다 진리와 자유를 이야기하는 교사의 입을 갖고 살고 싶습니다.

나는 교사의 이름으로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교과서에 갇힌 학교 안의 교사를 거부하고, 내 삶의 전 영역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교사로서 살고 싶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신발 한 짝이 벗겨지면 다른 신발 한 짝도 벗어 던져 도움을 주는 간디의 마음을 배우며 실천하고 싶습니다. 비가 오면 내가 쓴 우산을 벗어 던지고 함께 비를 맞으며 걷는 친구로서 살고 싶습니다. 간밤에 길에서 얼어 죽은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며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며 살고 싶습니다.

2. 일기일회 :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며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입니다.”

(1) 나의 탄생 : 분꽃 같은 나의 어머니

석양이 산등성이에 걸려 은행 알처럼 노랗게 쏟아졌다. 돈 사러 떠난 아버지는 오지 않았는데 분꽃은 인정 없이 피었다. 어머니의 부엌에서 고등어는 무에 스며들고, 장작불은 된장찌개처럼 끓었다. 굴뚝에서 청솔 타는 연기가  피어올라 어둠이 파랗게 내렸다. 아버지는 달빛에 살얼음 끼도록 오지 않고 어머니는 아랫목에 가슴 저린 밥을 묻어두었다. 울타리에 쪼그려 앉아 밤새 피는 분꽃,  나의 어머니

(2) 나의 만남 : 통영 바닷가 비탈진 집

새벽까지 별들이 바다에 쏟아졌다. 물고기들은 별빛을 주워 먹고 부른 배를 두드렸다. 어둠 속에서 금빛 비늘이 반짝반짝 빛나 바다 가득 메밀꽃이 피었다. 새벽까지 바다는 달을 품었다. 만삭의 바다는 시큼한 살구가 자꾸 먹고 싶었고 자주 산 그림자를 삼켰다. 밤새 무거운 몸을 뒤척이며 바다는 출렁거렸다. 통영 바닷가 비탈진 집에서 나는 하룻밤을 묵으며 비린 미역냄새 가득한 청춘과 쌉쌀한 멍게 맛으로 감겨들던 우정과 화려한 산호의 무늬를 자랑하는 사랑을 이야기하였다. 집 주위에서 서성거리며 엿듣던 동백도 연애 소식에 놀라 화들짝 핏 망울을 터뜨렸다. 그해 봄 동백은 밤을 자주 새웠고 나도 동백꽃처럼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떠나간 사람을 기다렸다 통영 바닷가 여름 밤, 나는 달을 보며 송진처럼 엉겨 붙은 인연들과 새벽 논두렁을 둘러보던 아버지의 논흙냄새와 누나의 분 냄새가 묻었던 분홍색 베개와 눈물로 얼룩진 연애편지와  조약돌처럼 따뜻한 사랑의 맹서를 생각했다. 그 해 여름 통영바닷가 비탈진 집에는 포도송이가 통영 계집애의 검은 눈동자를 그리워하며 까맣게 익어 갔다.

(3) 나의 이별 : 소래포구

떠남보다 기다림이 앞서는 소래포구의 새벽, 아버지가 연두색 장화를 신으면 배의 불빛은 시장 길목의 노란 대문처럼 밀물이 들어오는 때를 맞추어 소리를 냈다. 배가 떠나면 눈이 살얼음으로 자박자박 박히고 기러기 떼는 시장 문턱 술집 지붕에서 날개에 품었던 고개를 쳐들었다. 사람들은 뻘 밭에 박힌 목선처럼 뼈가 드러난 생애를 찬바람으로 덮으며 화톳불을 피웠다. 낙지처럼 감겨 붙는 목소리와 농어처럼 토실한 손등과 채소처럼 상큼한 눈동자와 돌담처럼 경계하는 가슴과 새우처럼 등 굽은 주름살이 모여, 소금처럼 굵은 눈을 맞으며 꽃게처럼 화려한 지폐를 건넜다. 사람들은 꼬막처럼 쫄깃한 사투리로, 갈대처럼 서걱이는 바람소리로, 홍어처럼 쏘는 욕설로, 바람이 빈 소주병에 집을 만든 사연과 비린 냄새나는 소문을 이야기하였다. 다만 천막 속에서 죽은 천희 아버지와 절름발이가 된 목재소 주인과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 인연은 침묵하였다.  기다림보다 그리움이 깊어진 소래포구의 새벽, 화톳불에 상자조각을 던져 넣으면 포구에서 썰물 때를 맞추어 바다로 나가 그물을 풀고 걷어 올렸던 눈썹 짙은 사내가 그리웠다. 그 사내는 뻘에 박힌 목선 한 척과 뼈만 남은 초상화를 방에 걸어둔 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화톳불에 등 돌리며 소래포구처럼 뒷짐만 지고 서 있었다.

(4) 나와 너의 인연 : 봄에서 가을로

1) 그 해 봄

-누나가 눈 녹듯 사라지던 그 해 봄 새벽, 어머니가 물었다.“오늘 새벽에 닭이 울지 않네요. 간밤에 횃 치는 장 닭을 어둠이 잡아 갔나 봐요.”아버지는 대답하였다.“무슨 소리여? 닭이 새벽에 울지 않으면 언제 울겠는가? 기다려보세.”-  

봄이 오는 바닷가 언덕, 물구나무 선 병아리 같은 개나리꽃이 피고, 입을 앙다문 목련 꽃 송이 핏기서린 눈의 매화는 취객처럼 노려보았다. 막다른 골목 길을 닮은 아버지의 얼굴은 죽은 지 한 달 정도 지난 고양이 같은 잿빛 하늘로 변하고 툇마루에 앉아 누나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모눈종이의 직선에서 길을 잃은 콤파스처럼 뾰족하게 말라갔다......세상은 너울처럼 출렁이다 잠드는 곳, 삶은 언덕에서 기다리며 언덕 너머를 바라보는 일...... 봄이 오는 바닷가 빨간 지붕의 집, 나는 울타리로 서서 귓불 빨갛게 언 동백처럼 봄볕에 얼굴을 태웠다. 봄이 오면  자꾸 누나가 끓여주던 멸치국물 우려낸 국수가 먹고 싶었다. 

2) 봄과 가을 그 사이 

당신이 보고 싶던 시간만큼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등불달린 주막에서 회초리 같은 슬픔 세 잔과  유리창에 비친 추억 세 잔과 까치밥처럼 매달린 감 같은 우정 세 잔과 싸리 꽃처럼 화사한 수다 몇 잔과  구철초처럼 서러운 어머니의 얼굴 몇 잔 그리고 슬리퍼 신은 생활 한 병을 마셨다. 

3) 그 후 가을

당신이 보고 싶으면 문득 가을이 왔다. 당신 때문에 나는  우물에 비친 파란 하늘이 되고, 담청색 야전잠바차림의 은행나무가 되고, 장독대 항아리에 기대어 조는 햇살이 된다. 사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그 무엇으로 변하는 것, 당신이 보고 싶으면 성찰 없이 성장한 여름은 껍질로 메말랐다. 당신 때문에 나는 찬바람을 맞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손을 잡고 사람들 마음으로 걸어가는 길을 만든다. 사는 일이란 사랑을 받으면서 사랑하며 사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 당신이 보고 싶으면 내 마음은 곱게 물들며 기도를 하였다.  ......내 오랜 사랑아  몸 맘 다 아프지 마라 아픔은 내가 대신 겪어주마....이제 당신은 주먹 만한 모과 향처럼 코끝에 시리게 매달려 사랑으로 남았다.

(5) 일기 일회 : 바로 여기 이 곳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삶

이삭처럼 잘 여문 그리움을 손에 쥔 날, 하루 내내 마음이 어지러워 거리를 서성거립니다. 오전에는 얼룩무늬 햇살 드리운 은행나무 숲을 산책하다가 오후에는 노루오줌 같은 햇살이 졸다 가는 간이의자에 앉아 아이들의 웃음이 맴 도는 운동장을 바라봅니다. 저녁노을처럼 잘 익은 그리움은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크든 작든 그리움을 가슴에 담은 사람은 귓불 빨개지도록 허리 굽혀 신발 끈을 묶습니다. 그리운 사람에게 달려가려 꽁꽁 동여맵니다. 인생이란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먼 곳에서 찾아오는 그리움을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려고 허리 굽혀 눈물 감추며 신발 끈을 묶는 일입니다. 

겨울 바다가 그리워 경춘선 기차를 탔습니다. 굽이치는 몇 고개를 돌아 기차는 겨우 동해안 해안가에 나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에돌아서는 모퉁이가 없었다면 참 숨 가쁜 질주일 것입니다. 직선으로만 달리고 높이만 오르려 했다면 숨이 차서 오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곡선으로 돌고, 내리막길이 있고, 오르막길이 있어 숨 돌릴 여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산사가 그리워 개심사를 찾았습니다. 洗心洞을 오르면서 손을 씻고 마음을 씻습니다. 매캐한 소나무 향이 마음에 담깁니다. 한없이 치솟지만 않고 바람 불면 가지 내어주고, 구불구불 오르다 이제는 가지를 뻗습니다. 부러질 듯 한 없이 내리 뻗기도 합니다. 소나무는 숲을 이루면서 각자 자기 속에 부러진 상처를 안고 구부러진 모양으로 서 있습니다. 

마음의 강물이 흘러드는 사람을 만나면, 맑은 눈동자에 내가 보입니다. 잡은 손으로 따뜻한 조약돌 같은 약속이 전해집니다. 이 사람을 바로 지금 여기가 아니면 언제 어디에서 만날 것이며, 내가 아니면 누가 만날 것이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언제 어디에서 사랑할 것입니까? 

가볍든 무겁든 만남은 골목길을 에돌아 나오면 그리움으로 변합니다. 꼬리에 불붙은 황소처럼 다시 달려가면 바람만이 휑하니 골목길을 빠져 달아납니다. 전봇대에 매달린 광고지만이 바람에 울고 있습니다. 떠난 사람에게서 죽음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누군가의 죽음이 내 인생을 감소시키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먹고 잠자고 친구와 만나고 헤어지는 일입니다. 친목회나 송별연을 베풀고 눈물을 흘리고 웃는 일입니다. 한 달에 한번씩 머리를 깎고, 퇴근하면 화분에 물을 주고, 이웃사람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가운데 흘러가는 세월이 감소하는 일입니다.

 

3. 다시 이 땅의 교사로 서기 위하여

 

교사는 학생들의 머리에 남는 존재가 아닙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가슴에 남는 존재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의 이해관계로 남지 말고, 마음 좋은 사람의 팔과 다리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수업으로 남는 존재가 아닙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한 사람으로 남는 존재입니다. 수업시간의 실용적인 기술과 당장의 편안과 이익으로 남지 말고,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존중하며 아끼며 따뜻한 온기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을 체벌과 훈육의 논리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사는 학생들을 사랑의 원리로 가르치는 존재입니다. 규격화된 규칙이나 강압적인 위협으로 가르치지 말고, 따뜻한 말 한마디와 진심을 담은 손길과 정성을 다해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학생들보다 뛰어나고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살아가는 또 하나의 사람일 뿐입니다. 특별하게 대접받으려 하지 말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는 학생들한테 특수한 상황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사는 학생들한테 언제 어디서나 꼭 실천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당장의 이익이나 눈앞의 편안함보다는 약한 자에게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칭찬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사는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기비판을 통해 밭과도 같은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마음 밭의 잡초는 뽑고 곡식은 정성껏 가꾸어야 합니다.

교사는 자기만족을 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사는 자기만족보다는 미치도록 한 번에 한 학생씩 그리워하며 다가가는 사람입니다. 자기만족과 이익을 추구하면 교육의 본질을 잃기 쉽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교육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교사는 금맥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석탄을 캐내는 광부처럼 막장에 들어가 석탄을 고르느라 온 얼굴이 검게 변하는 사람입니다. 학생들의 단점 속에서 장점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크고 멋진 다리를 놓는 사람이 아닙니다. 맨발로 차가운 강물을 건너며 미끄러지기도 하고 넘어지면서 옷이 다 젖는 사람입니다. 미끄러운 돌을 밟으며 강물의 차가움에 온 몸의 한기를 느끼며 감기에 쉽게 걸리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교사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교사는 한 번에 모든 학생들을 다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교사는 한 번에 한 학생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일 뿐입니다. 교사는 바다를 메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넓은 바다에 돌멩이 하나 던지는 사람입니다. 넓은 바다에서 던지는 돌처럼 파문이 드러나지 않아도 그 돌을 꾸준히 지치지 않고 던지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때로 파도가 되기도 합니다. 바닷가의 돌들로 몰아치는 파도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파도에 밀린 돌들은 자기끼리 부딪치며 곱고 매끄러운 돌로 스스로 변하는 것입니다. 교사는 연한 나뭇잎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목련꽃의 화사함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바위 틈 속에서 핀 꽃의 향을 맡는 사람입니다. 짙푸른 신록의 성장보다는 단단하게 자기를 단련하여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나무의 나이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너무 무거운 잎과 가지를 떨어내고 맨 몸으로 자기를 지키는 나목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곱게 물든 단풍의 화려한 외출보다는 나무 밑거름으로 썩는 사라짐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감나무 끝 까치밥을 남겨놓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봄에 씨앗을 뿌리며, 여름에는 땀 흘려 가꾸며, 가을에는 추수를 거두고, 겨울에는 거둔 곡식을 나누는 농사의 지혜를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추수 끝난 들녘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사람입니다. 모내기 끝난 논에서 뜬 모를 건져 다지 심는 사람입니다. 팽팽한 연줄의 춤사위를 즐기면서도 끊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교사가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에는 국경이 없어야 합니다. 다만 교사 자신은 국경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교사는 국경 안에서 정치와 경제와 사회문화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더라도, 국경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교사는 국경 안에서 특정 지역에 연고를 두고 살아가더라도 국경도 없고 특정한 지역문화를 넘어서는 교육을 하며 살아갑니다. 교사는 고향을 떠났어도 고향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교사는 교실을 떠나있어도 교실의 풍경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교사는 학교 밖에 있어도 학교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4. 교육의 발견

통영 바닷가 비탈진 집에 가족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하룻밤을 묵으면서 통영 바다사람들과 밤새워 이야기했습니다. 바다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깨달은 삶의 지혜를 들으며 나는 교육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1) 진흙탕을 걷는 일

“선생은 지 아만 잘 키우면 되는 게 아니지요. 지 아만 잘 되게 하지 말고, 다소 못나고 부족한 내 아도 잘 되게 해 주소.” 세 형제 중 맏형의 말씀입니다. 교사가 자기의 아이에 대한 정성과 교육은 꾸준하게 하면서도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관심 없이 대하거나 직업적으로 또는 추상적으로 만나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교사는 구체적인 현실속의 구체적인 한 사람으로서 또 다른 한사람을 직접적으로 만나 살아갑니다. 간접적인 접속이 아니라 직접적인 접촉을 하며 눈동자를 마주하고 손의 따뜻한 감촉을 느끼며 마음을 주고받으며 생활합니다. 내 아이에 대한 이기적인 울타리를 형성하여 보호하면 경쟁에서 남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성공의 결과를 통해 부끄러운 과정을 합리화합니다. 아이의 삶은 정직한 과정에 있지 부끄러운 결과에 있지 않습니다. 교사는 자기 아이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마음을 뛰어 넘어 내 아이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도 하나의 삶의 주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내 집 마당만 황금으로 깔아 논다고 해서 아이가 잘 크는 게 아니지요.” 그 분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의 아이라도 집을 나서면 흙탕물을 걸어야 하고 진흙탕에 빠져 걸어가는 것이 현실의 삶입니다. 교사는 진흙탕을 걸을 수 있는 힘과 의지를 갖도록 하는 사람입니다. 그 힘과 의지는 내 개인적인 출세와 성공과 부귀영화를 떠나 세상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 연대의식이 담긴 꿈을 가질 때 생깁니다. 내가 직접 가담하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고, 내가 직접 당하지 않은 차별과 피해에 대해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 때 진흙탕을 걸어갈 수 있으며 자갈밭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2) 아버지의 꿈

교육은 아버지 세대의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며 모색입니다. 아버지가 살지 못했던 삶의 영역을 교육을 통해 살 수 있으며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다 위에서 고기를 잡으며 바닷바람에 검게 탄 얼굴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아버지들은 자신의 거친 삶을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습니다.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삶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교육은 아버지의 삶의 소망이 반영된 결과이며 아버지가 살아가는 삶의 이유입니다. 부모는 바다위의 태양이 얼마나 뜨거운지 그을린 얼굴로 가르치지만 바다가 깊을수록 옆에 솟은 산이 높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산에 대한 상상력과 꿈은 교사의 몫입니다. 부모는 바다에서 얻는 고기로 사는 방법을 보여주지만 바다에서 고기를 왜 낚아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못합니다. 고기를 낚는 이유는 교육의 몫입니다. 부모는 세상이 얼마나 고된 노동으로 살아야 하는지, 얼마나 뜨겁게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지만 넓은 세상을 알려주지 못합니다. 넓은 세상에 대한 꿈은 교사의 몫입니다. 부모는 성실한 생존의 방법을 알려주고 교사는 존중받으며 사는 세상의 생활을 알려줍니다. 고기 잡는 어부의 역할을 담당한 부모와 사람을 낚는 교사가 함께 아이들이 삶의 꿈을 가꾸도록 해야 합니다.


(3) 이복형제가 형제 되기

아이는 부모의 욕심이나 걱정으로 키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자발적인 삶의 동기를 만들며 스스로 커 가는 존재입니다. 아이의 자발적인 삶의 동기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강요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무관심으로 만들어 질 수 없습니다. 지나친 간섭과 강요는 아이를 거짓된 삶으로 이끌고 갑니다. 무관심은 아이를 방관하고 휩쓸리고 휘둘리는 삶으로 이끌고 갑니다. 아이는 부모의 온전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정성으로 성장합니다. 서로가 하나의 서로 다른 인격체로서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삶의 희망을 이끌어내고 서로의 믿음 속에서 존중과 존경의 신뢰 관계를 형성할 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성장하는 존재이지 키운다고 키워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복 형제사이라도 형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자라난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것은 그들 마음속에 다른 사람으로 향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삶을 자꾸 가두어 혼자로 개별화 시키고 원자화 시키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아이의 삶은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확장되어 이웃이 곧 내가 되는 삶을 살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웃의 불행에 눈을 뜰 때 거리에서 떨고 있는 사람에 대해 차마 도와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 아이의 삶은 온전하게 성장합니다.


(4) 세상을 사는 지혜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어부는 고기 잡는 일을 열심히 하고 교사는 교육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교사가 인기를 얻으려 하고 돈을 벌려 한다면 교육에서 벗어난 삶을 삽니다. 사는 곳은 학교지만 마음은 다른 것에 있다면 자기모순에 빠집니다. 사람과 삶의 분리만큼 거짓과 위선은 없습니다. 교사의 삶은 교실에서 열심히 아이들을 정성껏 가르치면서, 고민하고 두려워하며 용기를 낼 때 가능합니다.


(5) 동행

동행은 구름 속에 뜬 달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또 다른 인연을 만나 깊어지는 일입니다. 다소 부족한 아이라도 달이 화살처럼 달려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통영 바닷가 비탈진 집의 정겨움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아이를 만나 함께 살아가는 일입니다. 동행은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깊어지기도 하지만, 낯선 사람들의 진면목을 만나 가까워지는 일입니다. 오대산 동행이 ‘익숙함의 깊어지기’였다면 통영의 동행은 ‘낯선 사람들 속에서 사람의 진면목을 만나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