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지금 여기에서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을 죄라 한다. >
아주 오래된 유럽의 영화 중에 <로베레 장군>이라는 영화가 있다. 2차 대전 말기 독일의 나찌즘에 대항하여 싸우는 이탈리아 레지스탕스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 속에는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동조자들이 처형을 앞두고 한방에 갇혀 있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한 동조자가 "나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 나는 그때 그 상황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바로 그 때 옆에 있던 지도자가 말한다.
"바로 그때 그 상황에서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 바로 당신의 죄이다."
바로 지금 이순간 우리는 일을 하고 있고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람을 만나 일을 하는 행위속에서 사람들은 <그 무엇>에 온 정성을 기울이며
<그 누군가>에서 온 관심을 기울인다.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사랑이라 하고
꿈에 대한 지속적인 정성을 애착이라 한다.
그러고보면 삶이란 그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고,
그 무엇인가에 끊임없는 열정을 기울이는 일이다.
일중에서 좋은 일을 선택하는 것을 <용기>라 하며,
사람의 슬픔과 아픔을 먼저 보는 능력을 <이해>라 한다.
내가 바로 지금 이곳에서 하고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하며
내가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만나고 있는 사람속에서 아픔과 슬픔을 먼저 보아야 한다.
그런데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걸리고 불편하고 힘들므로
좋은 일을 선택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단풍이 이렇게 물드는 날에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은 죄이다.
단풍이 이렇게 사람마음속까지 물들이는 데 싯구절 하나 적지 않는 것은 인생에 대한 모독이다.
시는 시인의 영혼과 손에서 태어났지만 그 시는 독자의 삶에서 성장할때 완성되는 것이다.
기차가 선로를 이탈하고 있는 데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은 큰 죄이다.
함께 가는 선로가 구부러져 서로 엇갈리고 있는 데 나사 조이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큰 죄이다.
어젯밤에도 길에서 얼어죽는 자가 있는데도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은 죄이다.
내 영광이 다른 사람의 눈물위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는데도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은 큰 죄이다.
내 옆에서 눈물흘리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도
내가 울거나 눈물하나 닦아줄 손수건 하나 마련하지 못한 것은 죄이다.
아이들이 울고 있는데 침묵으로 일관하는 교사라면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손수건 하나 준비하지 못한 것은 교사로서의 무책임이다.
아이들의 행복이 무너져 불행한데도 어찌 교사인 나만 행복할 수 있는가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무너져 내리는 교실에서 누가 감히 교사라 할 수 있는가
바로 지금 이곳에서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은 큰 죄이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좋은 일을 할 줄 알며
바로 지금 이곳에서 좋은 교육을 선택하며
바로 지금 이곳에서
사람을 좋게 사랑하는 일만이 내 삶에 허락될때
우리는 교사의 길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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