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에 흘러드는 강물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강물이 되고 싶습니다.
앞산이 그림자로 넘어져 쓰러질 때
한껏 팔 벌려 안아주고
나무숲이 황소 울음으로 소리지를 때
한껏 귀담아
가슴으로 덮는
어머니의 품을 닮고 싶습니다.
정말 강물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흘러나와
다시 사람 사는 세상으로
흘러들고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흘러 나와
다시 사람의 마음으로 전해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살아 온 세월처럼
마음과 마음의 물꼬를 트는
물길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강물이 되고 싶습니다.
전봇대에 붙은 광고지가
무섭게 울어대는 새벽 녘
술 취한 자의 발걸음으로
타박타박 태어나고
가슴 뻐근한 사랑을 잃은 자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흔한 유행가 가락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제는 눈이 내렸습니다.
군대 시절 흠씬 두들겨 맞은 일이
늘 악몽으로 되살아나듯
눈 내렸던 어제는
너무도 선명하게
첫사랑의 아픔이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그 계집애의 목소리마저도
가물가물할 뿐인데도
그 아픔만은 여전히 가슴을 훑고 있습니다.
세월의 상처라 여기고
흐르는 세월 속으로 실어 보내기에는
아직 미련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겠지요.
어머니!
당신의 한 세월 속에도
첫 눈 내리는 날이 있었을 것이고
첫 눈 내리는 날
가슴을 할퀴는 아픔이 있었을 테지요
그 아픔이 찾아올 때마다
당신은 늘 화롯불을 뒤적이며
눈물을 흘렸을 테지요.
설령 아버지가 왜 그러느냐 물을라치면
당신은 먼저 화롯불이 뜨겁다며
한 발 물러나 앉았겠지요
생활의 땀내가 배인 당신 손을 들어
얼굴 한 번 쓸어 내렸겠지요
이제는
저도 한 발 물러나 앉고 싶습니다.
너무 앞서려 애썼던 시간인 듯 합니다.
주린 배를 채우려는 산 짐승처럼
세상의 정글 속에서 헤맸던 시간인 듯 합니다.
욕정을 내뿜는 외양간에 매인 수소처럼
이리 저리 세상을 치고 받았지만
오히려 고삐만이 옥죄어 올뿐입니다.
이제는
물러나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에 앉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강물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이 되고
그 강물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
강물처럼 흐르며 살고 싶을 뿐입니다.
2000.12.30.여름지기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