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들 때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두 사람에게
함민복
한 아름에 들 수 없어 둘이 같이 들어야 하는 긴 상이 있다
오늘 팔을 뻗어 상을 같이 들어야 할 두 사람이 여기 있다
조심조심 씩씩하게 상을 맞들고 가야 할 그대들
상 위에는 상큼하고 푸른 봄나물만 놓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뜨거운 찌개 매운 음식 무거운 그릇도 올려질 것이다
또 상을 들고 가다가보면 좁은 문이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좁은 문을 통과할 때 등지고 걷는 사람은 앞을 보고 걷는 사람을 믿고
앞을 보고 걷는 사람은 등지고 걷는 사람의 눈이 되어주며
조심조심 씩씩하게 상을 맞들고 가야 할 그대들
한 사람이 허리를 숙이면 한 사람도 허리를 낮추어주고
한 사람이 걸음을 멈추면 한 사람도 걸음을 멈춰주고
한 사람이 걸음을 독촉하면 한 사람도 걸음을 빨리 옮기며
조심조심 씩씩하게 그대들이 걸어간다면
좁은 문쯤이야!
좁은 문쯤이야!
오늘부터 같이 상을 들고 가야 하는 그대들이여
팔 힘이 아닌 마음으로 상을 같이 들고 간다면
어딘들, 무엇인들, 못 가겠는가, 못 들겠는가
오늘 여기 마음을 맞잡고 가야 할 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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