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박성우의 <두꺼비>, <거미>, <어머니>

nongbu84 2016. 3. 18. 09:13

1. 두꺼비 - 박성우

 

아버지는 두 마리의 두꺼비를 키우셨다

 

해가 말끔하게 떨어진 후에야 퇴근하셨던 아버지는 두꺼비부터 씻겨 주고 늦은 식사를 했다 동물 애호가도 아닌 아버지가 녀석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 나는 녀석을 시샘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녀석을 껴안고 주무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 살짝 만져 보았다 그런데 녀석이 독을 뿜어대는 통에 내 양 눈이 한동안 충혈되어야 했다 아버지, 저는 두꺼비가 싫어요

 

아버지는 이윽고 식구들에게 두꺼비를 보여 주는 것조차 꺼리셨다 칠순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날이 새기 전에 막일판으로 나가셨는데 그때마다 잠들어 있던 녀석을 깨워 자전거 손잡이에 올려놓고 페달을 밟았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아버지는 지난 겨울, 두꺼비집을 지으셨다 두꺼비와 아버지는 그 집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봄이 지났으나 잔디만 깨어났다

 

내 아버지 양 손엔 우툴두툴한 두꺼비가 살았었다

 

 

2. 거미 - 박성우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디론가 떠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3. 어머니 - 박성우

 

끈적끈적한 햇살이

어머니 등에 다닥다닥 붙어

물엿인 듯 땀을 고아내고 있었어요

 

막둥이인 내가 다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 일요일이었던 그날

미륵산에 놀러 가신다며 도시락을 싸셨는데

웬일인지 인문대 앞 덩쿨장미 화단에 접혀 있었어요

 

가시에 찔린 애벌레처럼 꿈틀꿈틀

엉덩이 들썩이며 잡풀을 뽑고 있었어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어머니

지탱시키려는 듯

호미는 중심을 분주히 옮기고 있었어요

날카로운 호밋날이

코옥콕 내 정수리를 파먹었어요

 

어머니, 미륵산에서 하루죙일 뭐허고 놀았습디요

뭐하고 놀긴 이눔아, 수박이랑 깨먹고 오지게 놀았지

 

-시집 2002,창작과 비평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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