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
1
이 봄에는 단 한 번의 손을 잡아라
봄밤이 소란스럽게 튼 손등을 내밀면
그 손을 단 한 번 꼭 잡을 일이다.
이 봄에는 단 한 번의 도둑질도 허락하라
네 맘으로 봄의 손길이 쑤욱 들어오면
네 마음의 곳간을 열어 맘껏 퍼줄 일이다.
도둑이야, 낭창낭창하게 외치다간
꼬리에 불붙은 황소가 달아나듯
봄이 달아나 참 낭패(狼狽)다.
2
이 봄, 연두로 말하지 마라
웃자란 감나무의 떫은 꽃
꽃 지고 나야 돋는 목련 잎
아삭하고 상큼한 오이 줄기
비갠 아침 모든 것들은
이미 연두로 말하고 있다
이 봄, 용서를 구하지 마라
수천의 작고 붉은 혀를 묶어 침묵하는 느티나무
잘못도 없이 용서 빌며 손을 모으는 플라타너스
부끄러워 찬란하게 머리 긁적이는 미루나무
비오는 저녁 모든 나무는
이미 충분하게 용서받았으니까
이 봄, 결코 꽃을 꺾지 마라
더 이상 그리운 맘 오므릴 수 없어
잎보다 먼저 핀 산수유 꽃
다리 달린 봄볕에 얼굴 그을려
노랗게 탄 속조차 내미는 민들레 꽃
온 하루의 저 꽃들은 네가 그리워
온 땅에서 맘껏 터진 나의 사랑이다
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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