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배꽃 - 공주 배밭에서

nongbu84 2016. 4. 18. 16:45

배꽃

1

 

부서지지 않는 바위가 어디 있으랴

비바람 휘몰아치고 서리 내리고

별이 시리고 달이 차가운데

부서지지 않는 바위는 없다

이슬 맞고 한데서 잔 세월들

얼마나 많은 날을 봄볕이 지르밟았을까

짓찧여 패인 홈, 그 안에 뿌리 내리도록

제 머리에 이고 통증을 견디면

바위들 제 몸 부수어 산을 이루고

그 산, 송화 가루(松花) 뻑뻑하도록 흩날리더라

 

쪼개지지 않는 대나무가 어디 있으랴

자벌레가 제 키를 다해 뼘을 재고

별은 창을 날리고 달은 칼춤을 추는 데

쪼개지지 않는 대나무는 없다

몸살 난 엄동설한[嚴冬雪寒]의 시간들

어찌나 고요한 밤을 날바람이 몰아쳤을까

흔들려 생긴 틈, 그 안에 자라나도록

제 몸의 갈라진 금을 한 백년 견디면

가지들 제 몸 쪼개어 숲을 이루고

그 숲, 대나무 꽃 요란스럽게 찬란하더라

 

2

 

세상에 아프지 않는 영혼이 있으랴

세상은 삶을 너무 어림잡아 후려쳐

막다른 골목에서 비 맞아 젖는 날이 많다

이별은 죽는 일처럼 너무 간단하여

자정 넘어 대합실은 연가(戀歌)를 부르지 않는다

삶 안에는 죽음 보다 못한 것도 들어 있어

희망을 파는 영혼의 가게도 폐업한 지 오래다

죽음 안에는 삶보다 더 나은 것도 들어 있어

취나물 봄 향처럼 맑은 아이들은 아프다

거리에서 비를 맞으며 젖은 상처들

얼만큼 한낮의 태양아래서 침묵이 무늬졌을까

젖은 상처가 마른 흉터, 그 안에 돋아나도록

견딜 수 없는 일조차 견디고 나면

옹이들 제 삶을 간절하게 담아 문양을 새기고

그 문양(文樣), 물집 터진 배꽃과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배 밭에서 너를 기다리다가 말벌에 쏘였다

퉁퉁 부은 마음 한 가운데 벌침이 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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