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를 추억함 2
가장 끝끝내 가장 끈끈하게 오르는 봄의 꽃망울을 보라
뿌리에서 줄기로 오르기 위해 겨울의 껍질을 벗겨내느라
손톱 뭉툭해져도 함부로 멈추지 않고 두들겼다
딱딱하고 차갑게 식은 그 땅속의 닫힌 창문을.....
줄기에서 가지 끝 우듬지에 오르기 위해 찬바람 뭉치로
등짝 시퍼렇게 두들겨 맞은 날은 얼마나 많았던가
더운 땀을 자주 흘려 젖지 않은 날은 또 얼마였던가
봄날 꽃망울조차 함부로 날카롭지 않고 뭉툭하기로 했다.
오망하게 들썩이던 눈두덩에 앉으려던 청나비가 미끄러져
강물에 빠지고 그 날부터 강물은 푸르게 물들었을 것이다.
해까지 푸르게 물들이지 않은 것만은 참 다행스런 일이다.
오늘도 저 나무 속 어딘가 나무늘보가 가장 느리게
기어오르다 어느 순간 매달려 낮잠을 자고 그이의
꿈속에선 푸른 나비가 하얀 장다리꽃 밭을 날고 있을 것이다.
오, 느리고 외롭게 가는 시간의 아름다움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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