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옴팡집에서

nongbu84 2017. 9. 18. 12:52

 

옴팡집에서

    

 

1

옴팡 들어간 골목의 맨 안쪽 집 문지방을 끼고 앉아

고집스런 옛날과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을 생각하는,

 

가장 오래되어 쓸쓸한 칩거(蟄居)의 푹 패인 얼굴

    

 

2

뜰팡 신발에 저녁 해가 철딱서니 없이 들어 앉길래

마루에 앉아 가지런하게 착 달라붙은 앞산을 접었다 폈지요

왼쪽으로 대숲에 보름달 걸려 그림자만 빈 마당을 쓸고

오른쪽으로 배꽃이 화들짝 놀라 후두둑 떨어졌습니다

 

혼자인 저녁이면 대문 앞에 나가 골목을 접었다 펴기도 했지요

싸리 꽃처럼 환한 누나와 아버지가 떠난 상여(喪輿)길이

양쪽 길에서 아지랑이 피듯 어지럽게 달려오면

눈 비비던 손등 위로 푸른 강물이 하염없이 흘렀지요,

 

아득한 강을 반으로 접었다 펼쳐보았습니다

이쪽 강둑과 저쪽 강둑의 미루나무가 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서 서로 마주볼 뿐 말이 없었지요

둑길을 따라 길게 누운 생애(生涯)만이 물안개 속으로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유배(流配)의 땅에 서서 삶의 허리를 접었다 펴면

홀연히 다가와 저녁마다 살아나는 것들이 있지요

곁에 비로소 다가와 손을 잡아 흔드는 분꽃 같은,


 

옴팡집에서

    

옴팡 들어간 골목의 맨 안쪽 집 문지방을 끼고 앉아

고집스런 옛날을,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을 생각하는

가장 오래되어 쓸쓸하고 푹 패인 칩거(蟄居)

    


뜰팡 신발에 저녁 해가 철딱서니 없이 들어 앉길래

마루에 앉아 가지런하게 달라붙은 앞산을 접었다 폈지요

왼쪽으로 대숲에 보름달 걸려 그림자만 빈 마당을 쓸고

오른쪽으로 배꽃이 화들짝 놀라 후두둑 떨어졌습니다

 

혼자인 저녁이면 대문 앞에 나가 골목을 접었다 펴기도 했지요

싸리 꽃처럼 환한 누나와 아버지가 떠난 상여(喪輿)길이

양쪽에서 아지랑이 피듯 달려와 눈 비비던 손등 위로

강물 같은 핏줄이 푸르게 흘렀지요,

 

강을 반으로 접었다 펴보았습니다

이쪽 강둑과 저쪽 강둑의 미루나무가 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서 서로 마주볼 뿐 아무 말이 없었지요

강둑길을 따라 길게 누운 생애(生涯)만이 접었다 펴지면서

둑길을 따라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황톳길 흙먼지를 날리며 떠나는 당신의 뒷모습이 다가왔습니다

 

녹슬어 사라져가는 유배(流配)의 집에서도 삶을 가끔 접었다 펴면

더러 홀연히 살아나는 것들이 있지요

비로소 다가와 곁에 서서 나를 흔들어 깨우는 옴팡 집

파란 대문 옆의 분꽃이 허리를 접었다 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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