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한 알
사람들은 내게서 단 향내를 맡고 가지만
내 안 속속들이 밴 쓴 울음을 들을 수 있을까
나는 향기를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꽃잎은 비에 젖어 흔들리는 날이었고
천둥번개의 부리에 살점이 쪼이었고
가을 서리라도 내리면 낯짝이 얼얼하고
입술도 굳어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도 오랫동안 우러나오는 향기이고
비에도 젖지 않는 향기이고 또
나를 찍는 부리에 향을 묻히는 용서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바람 찬 길거리의 저렴한 삶이거나
군복 바지의 주름 같은 생활에서
양철지붕을 때리는 소나기소리에도 놀라
꺽꺽 속울음만 삼켜 딸꾹질로 살았던 것이다
그 못나고 다정하지도 못한 슬픔 때문에
또 높지도 못하면서 쓸쓸한 외로움 때문에
위태위태한 생애의 가지 맨 끝에 매달려
흔들리고 떨면서 속으로만 우는 것이다
내 삶의 끝까지 슬픈 가슴이 있다면
슬픔조차 사라진 슬픈 세상을 위해
내 수만 번은 더 서럽고 아프게 살아
그 마른 옹이에 무늬 하나 새길 수 있다면
아주 나중 다시 태어나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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