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모과 한 알

nongbu84 2017. 10. 13. 16:33

 

 

모과 한 알

 

사람들은 내게서 단 향내를 맡고 가지만

내 안 속속들이 밴 쓴 울음을 들을 수 있을까

 

나는 향기를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꽃잎은 비에 젖어 흔들리는 날이었고

천둥번개의 부리에 살점이 쪼이었고

가을 서리라도 내리면 낯짝이 얼얼하고

입술도 굳어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도 오랫동안 우러나오는 향기이고

비에도 젖지 않는 향기이고 또

나를 찍는 부리에 향을 묻히는 용서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바람 찬 길거리의 저렴한 삶이거나

군복 바지의 주름 같은 생활에서

양철지붕을 때리는 소나기소리에도 놀라

꺽꺽 속울음만 삼켜 딸꾹질로 살았던 것이다

 

그 못나고 다정하지도 못한 슬픔 때문에

또 높지도 못하면서 쓸쓸한 외로움 때문에

위태위태한 생애의 가지 맨 끝에 매달려

흔들리고 떨면서 속으로만 우는 것이다

 

내 삶의 끝까지 슬픈 가슴이 있다면

슬픔조차 사라진 슬픈 세상을 위해

내 수만 번은 더 서럽고 아프게 살아

그 마른 옹이에 무늬 하나 새길 수 있다면

아주 나중 다시 태어나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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