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꽃이 피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산등성이 비스듬한 잔돌밭에 억새만이 깃어 물결을 이루었다 개미떼가 발등을 물어뜯었는지 억새밭이 화들짝 놀라 몸서리치자 새떼가 날렵하게 날아올랐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뾰족하게 날아갔다 이마 쪼인 노을이 숨 가쁘게 등성이를 오르다가 자작나무의 가지를 붙들고 숨을 고르고 있다
발갛게 익은 가을 산, 잔돌밭 가득 억새꽃이 하얗게 피었다 오래전 그 밭을 일구어 팽팽한 고구마를 캐던 아버지의 생애가 출렁이는지 눈앞이 희뿌옇다 화살촉 같은 주둥이의 잔돌이 쌓인 돌무더기에서 아버지의 이 같은 사금이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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