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골 마을
집 한 채 없던 갓골 양지 뜸에 뒷걸음만이 허락된 삶들이 하나 둘 집을 짓고 논밭을 일구며 젖은 마음 빨아 말리는 마당을 내고 꼬들꼬들한 무말랭이 무쳐 이웃집에 마실 다니고 자작자작 썰어 다진 인정 나누며 마을이 생겼다만
그 그늘에 앉아 시름을 달래고 안부를 묻고 거머리처럼 파고 드는 生의 통증을 다독이던 마을 들머리 저 머리 수북한 느티나무 없었다면
그 연하고 말랑말랑한 두부 같은 그늘로 이어지던 길의 가쁜 숨소리와 맷돌로 갈아 솥에 넣어 끓이고 체로 걸러내어 간수를 붓고 간간하게 끓여 엉겨 붙은 것들을 눌러 허튼 거짓 한 방울까지 뺀 오롯한 사랑이 없었다면
상큼하고 아삭한 生미나리같은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고 사는 건 삽짝을 바라보는 빈들의 저녁처럼 적적할 것이어서
마을 들머리 느티나무는 겨울에도 빈가지 그림자로 눈 덮인 땅에 제 그늘의 넓이를 가늠하며 애써 혼자 서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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