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4. 묵호 논골담길

nongbu84 2018. 2. 2. 08:23

 

묵호 논골담길


골목골목의 모든 집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당신이 그 골목 어딘가에 살았다고 하길래

검은 끈으로 지붕 동여맨 재술네를 돌아

무화과 짓물러 떨어지는 얼음집을 비껴

가시에 별빛 자주 박히던 대추나무집 지나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렸지요

 

비탈에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

바람에 긁혀 대문은 빨간 약 바르고

담벼락엔 흰 반창고 붙였지요

슬레이트 집 밥상엔 상추

소금에 절인 가난과 얼버무려져

짠 맛 대문너머까지 풍겨왔고요

대문 파란 집에선 가지가 빛나고

호박넝쿨 굵은 머리숱 긁적였지요

 

가자미 눈처럼 한 쪽으로만 쏠린 집

대문은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보라색 도라지꽃 활짝 펴

마지막 몇 해를 옆으로만 누워

석양을 바라보았던 당신 집이었지요

맨발로 걷는 듯 발바닥이 쑤셔왔습니다

그 집에 들어설 순 없었지요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이 살아 있어야 할

집하나 남겨 두어야 했지요

가득 차 출렁이던 당신 신발의 파도 소리와

바다에서 막 씻어 건져 올린 당신 눈 속의 노을과

수평선까지 닿던 당신의 눈길

영영 살아 있어야 하잖아요

 

텃밭 노란 장다리꽃만 한참 바라보다

골목을 단숨에 치고 올랐습니다

빗물 쓸고 간 자리로 눈물이 따라 흘렀지요

언덕에서 빨간 등대처럼 수평선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날 바다가 검푸른 도라지꽃

자꾸 토해 내는 걸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閼雲曲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맨홀뚜껑  (0) 2018.03.02
길고양이  (0) 2018.02.09
3. 고양이의 옥탑방  (0) 2018.01.31
2. 접목(椄木)  (0) 2018.01.26
1. 짚신 한 켤레  (0) 2018.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