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 한 켤레
이 밤 지나면 형은 서쪽 흑산도로, 나는 영산강 건너 강진으로 귀양 간다 오랏줄에 묶인 유배의 몸 따라 과천 지나 금강까지 따라붙던 바람이 갈재를 넘지 못하고 머리 풀어 산과 강을 떠도는 밤, 율정의 주막집 문풍지 황소처럼 울고 처마 끝 등불 퉁퉁 부어올라 흔들렸다 앞마당 밤나무 칼바람에 피붙이의 목 자르듯 가지를 찢고 뒤꼍 대나무 속을 삭이느라 제 잎 잘라냈다 방바닥 냉골은 뼈 속까지 스며들어 마디마다 밤송이 하나씩 박혔다
등잔불 심지마저 얼어붙은 새벽, 머리 풀고 빈들 헤매던 마음 문틈으로 새어들어 냉수사발 살얼음으로 내렸다 문고리처럼 동그란 달빛 피오줌 가득한 요강 바닥에 내려앉아 내 가슴 싹둑싹둑 작두질하였다 윷판의 말처럼 함께 얹혀 떠나는 길 생살 깎은 윷짝처럼 함께 하는 귀양 말판을 찢고 싶다 강물 얼려 길 만들고 눈발로 깊은 산 넘어 고향으로 치닫던 마음조차 밧줄에 묶여 상투 푼 머리 서로 묶어 이별을 거부하고 맑은 핏줄로 뜻을 묶지만 끌려가는 길 방문 앞부터 길이 갈라졌다
형님! 몸조심 하시고, 아우야! 살아있으면, 손에 쩍쩍 달라붙는 문고리 잡아 방문 여니 핏덩이 흩어지듯 진눈깨비 내린다 까마귀 제 새끼 가슴 쫍듯 형님 내 가슴에 머리 짓찧고 바람에 휘었던 싸릿가지 문턱을 넘어 내 언 종아리 친다 끌려가는 형님 엄지발톱 뒤집혀 피 배인 짚신 한 짝 벗겨졌다 나도 반대쪽 한 짝 벗어 옆에 놓으니 짚신 한 켤레, 눈 질펀한 마당에 파란 숫돌처럼 꽂혔다 한 쪽이 맨발이라서 한 쪽으로만 기운 형의 그림자 곧게 선 칼날처럼 사라질 때 나는 숫돌에 날을 갈았다
율정의 이별
율정의 밤나무 주막집 문풍지 황소처럼 우는 밤, 퉁퉁 부어오른 등불이 처마 끝에 매달려 흔들렸다 마당 앞 밤나무는 북쪽 칼바람에 피붙이의 목을 자르듯 가지를 찢었다 뒤꼍 대나무는 목구멍 복받치는 울분을 누르르라 제 잎을 잘라내며 서걱였다 오랏줄에 묶인 유배의 몸을 따라 과천을 지나 금강까지 따라붙던 바람이 갈재를 넘지 못하고 머리 풀어 헤치고 떠도는 밤, 차가운 방바닥 냉골이 뼈 속까지 스며들고 뼈마디마다 밤송이 하나씩 박혔다 이 밤 지나면 나는 나주 영산강을 건너 누릿재와 성전 삼거리를 지나 강진으로, 형은 서쪽의 흑산도로 귀양 간다
등잔불 심지마저도 얼어붙은 새벽, 머리 풀고 산과 강을 떠돌던 마음들이 문틈으로 새어들어 냉수사발에 살얼음으로 내린다 문고리처럼 동그란 형의 얼굴이 피오줌 가득한 요강 바닥에 내려 내 가슴을 싹둑싹둑 작두질 한다 윷놀이의 말처럼 함께 얹혀 떠난 길, 생살 깎은 윷짝처럼 함께 아픈 생애, 상투 푼 머리 서로 묶어 이별을 거부하고 맑은 피로 뜻을 묶었지만 끌려가는 길 방문 앞부터 길이 갈라졌다 문을 열면 헤어져야 한다 문고리 잡으니 형님 마음 내 손에 쩍쩍 달라 붙는다
흩어지는 핏덩이처럼 진눈깨비 하늘 가득 흩뿌리고 밤나무 가지에 앉은 까마귀 제 새끼 가슴을 쫍는다 형님! 몸 조심하시고,..아우야! 살아있으면... 말이 혀에 감겨 목이 메인다 강물 얼려 길을 만들고 깊은 산 눈발로 넘으며 고향으로 치닫던 마음조차 밧줄에 묶여 길을 떠난다 형과 나는 옥돌을 쪼개어 나누어 손에 쥐고 헤어진다 끌려가는 형님 발에서 짚신 한 짝 벗겨진다 나도 반대쪽 한 짝 벗어 디딤돌 위에 벗어놓는다
검버섯 핀 댓돌처럼 얼어붙었다 한 쪽이 맨발이라서 한 쪽으로만 기운 형의 그림자 아득하게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