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장골 저수지
대나무 빗자루 잡은 듯 차갑고 쓸쓸한 날
불장골 저수지 방죽에 서서
얼음 내려앉은 수면을 바라보네
석양이 산등성이를 자주 넘지 못해
저수지 따라 에둘러 난, 산 밑 길 위에
하얀 이빨을 시리도록 드러낸 잔설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굽은 뼈를 드러내어
얼음 위에 박힌 한낮의 혐오같은 인연들
갈대 잎처럼 비수로 박힌 혀끝의 말들
귀퉁이가 문드러진 얼음판이
응어리졌던 날들을 검은 바둑알처럼 박고
흑백사진의 죽은 자들처럼 침묵하는 동안,
자갈돌 하나 결빙의 잠위에 던지면
화살처럼 뾰족하게 날아오르는 새떼들
허튼 것 다 버리고 이제는 더 이상
버릴 것 하나 없는 가장 날렵한 몸짓으로
제 안의 언 꿈을 깨우며 솟구쳐 오르네
물위를 기어가면서도 물에 젖지 않는
물뱀의 등 비늘이 스치듯
모두가 다 얼어도 결코 얼지 않는
가마우지가 날개가 퍼덕이듯
얼음판을 수직으로 진동하여
바닥까지 가 닿는 적요寂寥의 저 발소리,
그림자를 반영反影하여 우려낸
스며든 연민들을 반성하여 자아낸
冬眠하는 저수지의 저 심장 소리,
내 심장의 헛간에 폐허의 찬바람만 불고
부러진 언어의 뼈가 수북하게 쌓여
달빛조차 얼어붙어 건너오지 않는데,
한 무리의 새떼는 흰 낮달을 물고와
수정처럼 빛나는 얼음 꽃을 피우네
깊은바닥에서 길어올려 토해내는
저 수직의 숨 소리에 감전된 나는
혀를 자른 벙어리가 되어서야
세상 속으로 돌아갈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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