閼雲曲 -시

지상의 방 한 칸

nongbu84 2018. 12. 12. 10:53

 

지상의 방 한 칸을 위하여

 

닳고 닳은 대나무 빗자루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차가운 싸늘함이 손끝에 와 닿는다

영원히 이렇게 살 수는 없어

흑백의 영정으로 남은 젊은 청년,

뿌우옇게 번진 얼굴에

검은 근조 리본이 힘없이 드리워져

퉁퉁 불어터진 반달처럼 쓸쓸하다

가빠로 덮은 지붕의 마지막 집에서

강제로 퇴거당한 후 허물어져 가는

빈 집을 돌아다니고 거리를 헤매다

이젠 주민등록증 사진을 확대한

죽음의 꽃잎, 그 한 장으로 남았다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추운 겨울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습니다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저희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 주세요

광고전단 뒷면에 남긴 유서 한 장,

마지막 순간까지 어머니가 몸 누일

지상의 방 한 칸이 삶의 전부였다

이 넘치는 번영의 지상地上

등 따숩게 몸 누일 방 한, ,

그 평온한 잠자리 없단 말인가

가난은 도시의 안주머니에 숨어있는

송곳처럼 안으로 안으로만 찔러댔다

가난한 그대는 길 잃은 고양이처럼

치이고 밀리고 쫓겨나 눅눅하고

습한 지하의 어둠에 고립되었다

그대의 마지막 주소지는

거주불명 처리된 동사무소,

한때 나를 선생이라 믿어

희망을 가지기도 하였으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철로의 건널목에서 세상을 등졌다

이렇게 어둠의 꽉 막힌 방 한 칸에서

혼자만 평화롭게 잠들고

나는 이 차가운 지상의 방에서

잠들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이렇게 이렇게는 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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