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逆鱗
산비탈을 거슬러 억세게 핀 하얀 꽃,
生의 길을 한꺼번에 다 걸을 수는 없어
잠시, 아침 한 때 잔돌밭에 앉아
바람의 톱날에 긁힌 허벅지를 식히고 있다
흰 머리칼 찬바람에 흩날리며
목울대까지 치켜세운 깃 정갈하게 여미고
목은 산 너머 먼 바다를 향해 빼어들었다
떠난 사람 찾아 새벽부터 나선 길,
슬픈 마음 한참 옻올라 온 몸 버짐 피고
반짝, 흰목 마른 비늘 빛나면 억새밭엔
슬픈 물결이 生의 전부처럼 일렁였다
말로는 그리움을 다 감당할 수 없어
울음은 저의 속속들이 깊게 스며들고
개미떼가 발등을 물어도 아프지 않았다
손가락이 유난히 길어 열 손톱마다
사금 같은 낮달이 빛나던 사람
그 사람 한없이 그리워 찾아 가는 길,
갓 지은 햇살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자
새떼가 화살처럼 뾰족하게 날아올랐다가
이내 다시 돌아와 저이의 가슴에 박혔다
겨울 아침에도 빨갛게 몸단 산수유 처럼,
그 사람에게 가 닿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
마음들 밭가 돌무덤으로 쌓였지만
그 돌 틈 사이에서 억새꽃은 슬픔보다
먼저 깨어나 역린처럼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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