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8월 02일(수) “당신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05 : 00 이쯤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06 : 30 아침식사, 김치 햄찌개와 하얀 밥 07 : 20 예미 초등학교를 출발, 운동화에 들어간 모래알이 도보를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상수도 도수 터미널을 통과하고 동강 가는 길을 따라 걷다. 08 : 30 고성 안내소에서 첫 번째 휴식 08 : 50 출발 09 : 30 소나무 숲 그늘에서 휴식 동녘이는 형들과 금방 친해진다. 하람이가 시간을 두고 탐색하는 것에 비해... 09 : 50 출발 10 : 35 <선생 김봉두>의 촬영지인 연포초등학교를 지나 거부기 마을로 향하는 중... 고추밭에서 일하던 아주머니 : “어디로 갈려고 하는 거래요. 어디로 가는 거래요?” 10 : 50 줄배를 움직이는 밧줄이 강 건너편 마을까지 매어져 있다. 11 : 00 거부기 마을 칠족령 넘기 전 마지막 집에서 휴식 집안을 정리하던 할머니 : “맛있는 거 좀 할머니 주고 가는 거 아니래?” 12 : 50 백운산 칠족령을 넘어 제장 마을 참나무 아래에 도착하다. 13 : 00 제장 마을 입구의 식당에서 자리를 2만원 주고 빌려 점심 식사 정의권 선생님 격려 방문하여 아이스크림과 초코파이 주다. 13 : 25 - 14 : 30 나무 그늘에서 낮잠 자다. 14 : 30 - 16 : 30 운치리 운치 분교 옆 상구네 민박집에 도착하다. |
1. 우리 일행은 잠시 방향을 찾고 있었다. 강가의 길은 이미 장마에 떠내려 간지 오래다. 그래도 지도에는 길이 있다. 연포초등학교 뒤 소를 키우는 집 수도에서 통에 물을 채운 후 일행은 떠났다. 바로 그 집은 <선생 김봉두>에서 소사 아저씨에게 김봉두가 머리를 감겨주던 수도가 있는 집이다. 그 집을 나와 지도에만 나와 있는 길을 믿고 걷기 시작했다. 일행이 마을을 통과 할 무렵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던 아주머니께서 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 나오면서 외친다.
“어디들 가는 거래요? 어디로 가려고 그리 가는 거래요? 거기로 가면 길이 막혔대요. 장마로 다 끊겼대요”
잠시 일행을 세우고 거부기 마을을 지나 제장 마을로 가려고 한다고 이야기 했다. 아주머니는 반바지 입고 그 풀숲을 헤쳐 넘어가려면 살이 다 베일 거라며 걱정을 한다. 아주머니가 알려 준대로 일행을 강가의 길로 향하지 않고 가던 길을 다시 돌려 거부기 마을로 향하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길 모르는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려고 버선발로 손님 맞듯, 밭에서 뛰어나오는 아주머니가 참 고왔다. 길 모르는 사람이 길을 잃을까 잡아 세우는 마음이 참 곱다.
몇 년 전 개심사에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길을 묻는 그대에게”라는 점집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묻는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냐고, 나의 미래에는 얼마만큼의 성공과 부와 명예가 보장 되냐고, 이 길을 가다 보면 금은보화 가득한 마을에 도달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그 점집은 길을 묻는 그대들을 찾아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다. 정말 그 곳에 가면 길을 알려 줄 수 있을까? 그 때 개심사에 오르면서 점집안 보다는 길을 묻는 그대에게 라는 간판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젖어 마르고 젖는 세월을 반복하면서 바짝 마른 몸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간판에서 바짝 마른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내가 가는 길에 금은보화와 부귀영화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너무 빨리 달려왔던 것은 아닐까? 낭떠러지가 있는 것도 모른 채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오던 것은 아닐까?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내가 걸은 자리마다 그 자국에서 왜 자꾸 눈물을 보면서 빨리 달아나고 싶었을까? 내가 신었던 신발을 부끄러워하며 구멍 난 양말을 감추기 위해 발가락이 쥐가 나도록 오므렸던 아픔을 이야기 하지 못했을까? 살아 온 날을 벗어나야 할 곳으로 여기며 새로운 날에 대한 꿈을 가꾸며 결국 늘 미워한 것은 누구인가?
2. 동강은 왼쪽 어깨에 깎아지른 절벽을 둘러매고 흐른다. 그 절벽을 붙들고 소나무가 매달려 있다. 한 폭의 화폭 같다. 강물은 몸을 뒤척이며 이리 저리 절벽을 들어 올렸다 내려 올렸다 하면서 어깨춤을 춘다. 여름 장마가 땅을 뒤덮고 어설픈 제방의 둑을 뭉개 뜨린 후 흙탕물로 화난 마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연포 초등학교에서 거부기 마을을 향해 산모퉁이를 에돌아 가다보면 맞은 편 산자락에 빨간 라면 봉지 같은 집들이 널려 있다. 그리고 맞은 편 건너 마을까지 줄 배를 끌던 밧줄이 매어져 있다. 저 밧줄마저 끊어졌다면........넘실넘실 춤추는 강물이지만 인연을 끊는 잔혹한 춤사위다. 머리를 깎고 출가하던 날 떨어지는 머리카락처럼 바람에 춤추는 운율이지만 남은 자의 질긴 인연과 그리움을 알리 없다. 줄 배를 끌던 밧줄만이 위안을 준다.
건너 마을로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달밤을 보냈으며, 건너 마을로 남 몰래 찾아들던 달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한번 찾아간 계집애의 품을 떠나 되돌아가고 싶지 않던 발길을 돌리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강물에 뿌렸을까? 주먹밥처럼 꽁꽁 언 가슴을 던지며 눈가에는 얼마나 살얼음이 서걱서걱 얼었을까?
너에게 가기 위해 강물줄기를 따라 몇 년을 걸어왔지만 아직 네게 갈 수 있는 줄 배 한 척
마련하지 못했다. 더운 날씨에 갑자기 서늘한 느낌이 든다. 언제쯤 네게 갈 수 있는 줄 배를 타고 줄을 당기며 휘영청 달 밝은 밤을 건널 수 있을까? 밤새 건너 날이 밝더라도 손에 물집이 잡히고 손바닥이 까져도 당길 수 있는 줄만 있다면 낡은 뗏목으로 왜 줄 배하나 만들지 못할까?
3. 거부기 마을에서 제장마을로 넘어가려면 백운산 칠족령을 넘어야 한다. 칠족령을 넘기 전 집 한 채가 등불처럼 매달려 있다. 그 집 평상에 앉아 쉬었다. 할머니는 장마에 젖은 집안 살림살이를 햇빛에 말린다. 장판이며 부엌 살림살이가 눅눅하게 젖어 있다. 우리 일행도 땀에 절은 살림살이처럼 여기저기 앉아 쉰다. 할머니의 잰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수도에서 물도 받아먹고 일행을 일어선다.
그때 할머니가 맨 뒤에 처진 나를 보고
“ 맛있는 거 있으면 나누고 가는 거 아이래, 쉬었다, 마당 그늘 값은 나누어야 하는 거래. 원 사람들이 그래?”
미안한 마음이다. 마당을 나누었으면 우리도 나누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했다. 할머니께 자꾸 제장마을로 가는 산길을 두 번 세 번 묻기만 했다.
우리 일행은 백운산 칠족령을 아무도 모른다. 그 길이가 어느 정도이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며 어느 곳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모른다. 장마에 풀이 우거져 사람다니던 길이 사라졌다. 다만 사람 다니던 흔적을 찾아야 한다. 사람이 다니면 길이 있을 테고 그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니까 보일 것이다.
4. 칠족령을 넘고 나니 지칠 대로 지쳤다. 지쳐 다 버렸는데 그리운 사람하나 남았다. 이 힘든 길을 그리운 사람 하나 남기려고 걷는지도 모르겠다.
2006년 08월 03일 (목) “내가 언제 네 무릎을 베고 누워 물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05 : 00 기상, 세수, 식사하다. 08 : 00 상구네 민박을 출발하다. 동녘이가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면서 힘들어하다. 녀석과 함께 맨 뒤에 처져 걷다. 자꾸 차를 타고 싶다고 한다. 09 : 00 휴식, 동녘이와 운동화를 바꾸어 신다. 11 : 00 가수리 나무그늘에서 휴식하다. 가수리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에 아픈 발을 담그 고 잠시 발의 아픔을 풀었다. 12 : 50 귤암리 귤암마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다. 낮잠도 자고.... 지금 나는 내 자신을 미워하고 싸우기보다는 내 자신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지닌 슬픔과 아픔까지도 사랑하고자 한다. 그것도 나의 일부니까. 14 : 10 귤암리 출발 15 : 30 광하교 밑에서 휴식 17 : 00 가리왕산 휴양림 입구에 있는 민박집에 도착 민박집 앞 냇가에서 목욕하다. 너무 차가운 물.... |
민박집에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루 지친 몸을 쉬면서 재잘거리고 있다. 이 녀석들은 걸을 때는 못 걸을 것처럼 힘들어 하지만 막상 휴식을 취하면 금방 상쾌한 웃음을 짓는다. 녀석들이 앉아 있는 평상 그늘에 함께 앉아 동빈이의 무릎을 베고 나도 누웠다. 누워 눈을 감는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아득해지면서 강물 소리가 들리고 매미 우는 소리며 바람 소리가 들린다.
“내가 언제 네 무릎을 베고 누워 동강 물소리를 듣고 산굽이를 헤아려 볼 수 있을까?”
눈을 뜨니 헤아릴 수 없는 산굽이 산굽이가 이어져 있고 넘실대며 절벽을 치고 오르는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네 무릎이 나를 떠받치고 나는 온 동강 물과 백운산을 떠받치고 있으니 네 무릎이 이 우주를 떠받치는 디딤돌이 된다. 우주의 가장 밑에 네 무릎이 있다. 살면서 언제 내가 이 아이의 무릎을 베고 누워 강물소리를 듣고 산의 높낮이를 가늠할 수 있겠는가? 내가 바로 이곳에 왔고 네가 이곳에 와서 함께 걷기 때문이다.
2006년 08월 04일 (금)
07 : 50 버스를 타고 용탄교 입구로 이동하다. 08 : 05 용탄교 입구에서 정선을 향해 출발하다. 11 : 00 정선 나무그늘에 도착, 목욕탕에 가다 12 : 00 점심 식사 후 터미널로 가다 13 : 00 서울 동부터미널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다. |
강가에 다녀오면
산은 내 머리맡에 앉았다 쉬어가고
내게는 강물 같은 사람을 두고 간다.
강가에 다녀오면
산은 베개가 되어 내 머리를 받쳐준다.
내가 베고 누운 산굽이에서
서걱서걱 이른 잠을 깨 산굽이를 넘는 사내가 보이고
줄배를 타고 떠나는 남편의 등굽이를 바라보는 여인이 보인다.
언제 내가 다시 네 무릎을 베고 누워 강물소리를 들고
산굽이를 헤아려 헤아려 주먹 밥 같은 눈물을 거둘 수 있을까
3박 4일의 동행은 일상생활의 기본을 되새겨 보는 행위이다. 먹고 자고 입는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는 일이다. 다만 의식주라는 생활의 기본을 해결할 때 서로 도와야 가능하다. 음식을 만들 때 함께 하지 않으면 끼니를 걸러야 하고, 함께 걸을 때 목이 마르면 물을 주어야 걸을 수 있다. 걸어가면서 네가 걷고 있기 때문에 내가 걸을 수가 있다. 강원도 동강 길에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나도 할 수 있다.
'牛步萬里-나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젊은 날의 주례사 (0) | 2009.11.09 |
---|---|
구룡령 옛길을 넘은 사람 (0) | 2009.09.27 |
창에 머물다 가는 슬픈 것들 (0) | 2009.07.24 |
등따숩고 배부른 세상을 위하여 (0) | 2009.07.24 |
결혼의 의미 (0) | 2009.07.17 |